월트디즈니가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의 미디어 제국인 21세기폭스의 영화와 TV 사업 등 주요 자산 인수에 성공하면서 로버트(밥) 아이거 디즈니 최고경영자(CEO)가 최대 승자로 주목받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은 디즈니가 폭스의 영화와 TV 제작사업 등 엔터테인먼트 자산과 해외 방송망,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훌루 지분 등을 524억 달러(약 57조 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디즈니는 폭스의 137억 달러에 달하는 부채도 떠안기로 했다.
인수 대상에는 영국 스카이와 인도 스타 등이 포함돼 디즈니는 상대적으로 약한 해외 TV방송망에서 존재감을 높일 수 있게 됐다. 내셔널지오그래픽과 미국 22개 지역 스포츠방송도 품에 안는다. 폭스방송국과 폭스뉴스, 폭스비즈니스네트워크와 폭스스포츠1 등은 이번 인수 대상에서 제외됐으며 향후 별도 회사로 분사될 예정이다.
그동안 픽사와 마블, 스타워즈의 루카스필름 등을 잇따라 인수해온 디즈니는 폭스의 인기 프랜차이즈까지 확보하면서 콘텐츠 역량을 더욱 강화하게 됐고 아이거의 영향력도 그만큼 더 커지게 됐다. 이번 인수는 세계 1위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인 넷플릭스를 추격하기 위한 아이거의 전략에 결정적인 승부수가 될 전망이다. 디즈니는 넷플릭스와 결별하고 2018년에 자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다. ESPN을 통해 스포츠 부문에서 스트리밍을 시작하고 나서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를 제공할 계획이다. 디즈니는 ‘토이스토리’와 ‘니모를 찾아서’ 등 픽사 만화영화와 ‘어벤저스’와 ‘아이언맨’으로 대표되는 마블스튜디오 작품, ‘스타워즈’ 시리즈와 ‘겨울왕국’에 이르기까지 이미 자체 콘텐츠가 풍성한 가운데 아바타와 엑스맨 등 유력 콘텐츠를 추가로 손에 넣게 됐다. 지난해 미국 영화 박스오피스 점유율에서 디즈니와 폭스의 영화 스튜디오인 20세기폭스 점유율은 약 40%에 달했다.
아이거 CEO는 “기술은 진화하고 시청자들은 더 많은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번 인수는 미디어 업계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CNN머니는 아이거가 이번 인수로 할리우드에서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거대한 영화·TV 제국을 구축하게 됐다며 그는 ‘21세기의 CEO’로 부상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 21세기폭스 회장이 아이거에게 자신의 왕관을 물려주는 형국이다.
아이거 개인적으로도 이번 인수는 의미가 크다. 우선 은퇴 걱정을 미루고 CEO 임무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 디즈니는 아이거가 오는 2021년 말까지 CEO를 맡으면서 폭스와의 통합 작업을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아이거는 이미 여러 차례 퇴임 시기를 연기했다. 그는 당초 2015년 4월 퇴임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2016년 6월, 2018년 6월, 2019년 7월 등으로 계속 연기했다. 디즈니 이사회도 아이거의 뒤를 이을만한 마땅한 후계자를 찾기 어렵다는 고민을 털어버릴 수 있게 됐다.
일각에서는 루퍼트 머독의 차남이자 폭스 CEO인 제임스 머독이 아이거의 뒤를 이을 것으로 관측했으나 아이거는 “디즈니나 다른 회사에서 그의 역할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며 후계자설을 일축했다.
아이거는 연봉과 성과급도 오르는 등 쏠쏠한 이익도 챙기게 됐다. 디즈니는 이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서류에서 아이거 연봉이 현재 250만 달러에서 300만 달러로 인상될 것이며 폭스 인수가 마무리되면 다시 350만 달러로 오를 것이라고 밝혔다. 아이거는 최대 4500만 달러의 성과급도 챙기게 되며 스톡옵션도 더 많이 받을 예정이다.
이제 아이거에게 남은 과제는 부진한 주가를 끌어올리는 일이다. 디즈니 주가는 이날 폭스 인수 발표로 2.75% 급등했지만 올해 상승폭은 6.09%에 불과하다. 이는 뉴욕증시 다우지수 올해 상승폭 24%를 크게 밑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