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호의 중구난방] 혁신과 꼼수, 갈림길에 선 ‘주 35시간’

입력 2017-12-18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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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2부 차장

‘신세계의 주 35시간 근무, 과로 사회 탈출 마중물 돼야’, ‘주목되는 신세계의 주 35시간 근무제 실험’, ‘주 35시간 근무제 도입한 신세계의 파격 행보’….

8일 재계 순위 10위인 신세계그룹이 전격 발표한 주 35시간 근무제로의 전환이 재계와 사회에 미친 파문은 엄청났다. 언론은 기사와 사설 등을 통해 신세계의 파격적인 근무제 전환에 대해 호평을 쏟아냈다. 재계의 자발적인 근로시간 단축이 앞서 기술한 것처럼 과로 사회 탈출의 마중물이 될 것이란 기대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이러한 호평의 근간이 된 것은 신세계가 근로시간 단축에 ‘임금 하락’이 없다는 전제를 뒀기 때문이다. 하루 1시간 근로시간을 단축함에도 종전의 임금을 그대로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 문제를 다룸에 있어 임금을 종전 수준으로 유지할 것인지가 항상 쟁점이 돼 왔음을 고려하면 신세계의 결정은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근로시간 단축의 수혜 대상이 되는 근로자들이 반발하고 나서면서 혁신은 꼼수로 전락했다. 신세계가 내세운 ‘일과 가정의 양립’, ‘저녁이 있는 삶’ 등 거창한 목표와는 거리가 먼 ‘인건비 절감’에 근로시간 단축의 진짜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마트산업노동조합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문제로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 심야수당 절감, 업무 강도 강화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마트에서 계산과 판매, 진열 등을 담당하는 근로자들의 현재 평균 월급은 145만 원이다. 시급으로는 올해 최저임금 6470원보다 500원 많은 6940원가량 된다.

문제는 주 35시간제를 시행할 경우 문재인 정부가 공약으로 내건 2020년 최저 시급 1만 원 시대에 주 40시간 일할 때보다 월급 26만 원, 연봉으로 312만 원을 덜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종전처럼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을 일하면 마트 노동자들은 2020년에는 월 209시간을 일하고 209만 원의 월급을 보장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근로시간이 하루 7시간, 주당 35시간으로 줄면 최저임금 1만 원을 적용해도 월급 183만 원 이상을 받기가 힘들어진다. 이렇게 발생하는 월급 격차가 26만 원이다. 이를 두고 마트노조는 신세계가 임금의 하향평준화를 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또 마트 폐점 시간이 오후 12시에서 11시로 1시간 앞당겨지면서 발생할 심야수당 축소와 인력 충원 없는 시간 단축으로 높아질 노동 강도에 대해 우려한다. 사실상 현재도 생계를 유지하기에 임금이 부족한 상황인데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미명(美名)하에 포기해야 하는 임금 손실분이 더욱 크게 여겨지는 것이다.

마트노조의 주장에 대해 신세계 측은 2020년의 일을 속단해선 안 되고 임금은 협상을 통해 결정한다고 선을 긋고 있다. 그럼에도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이 최근 한 포럼에서 급격한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부작용으로 신세계를 예로 들어 근로자들의 소득이 줄어드는 문제를 지적한 것을 보면, 마트노조의 주장이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치부하기도 어렵다.

아직 오지 않은 2020년의 일이다. 신세계와 마트노조 어느 쪽의 말이 맞을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더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신세계가 앞장서겠다”는 정용진 부회장의 약속이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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