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치킨집 사장님

입력 2017-12-18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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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영 산업2부 기자

오후 5시. 유리 창 너머로 보이는 가게는 텅 비어 있었다. 물어보기 적당했다. 부부가 운영하는 치킨 가게였다.

내가 해야 할 질문은 “조류인플루엔자(AI)가 터졌는데 생닭 수급이 잘 되고 있는가”였다. 돌아올 답은 뻔했다. 그래도 물었다.

앞선 세 점포와 달리 날카로움이 날아왔다. “그걸 왜 당신이 묻느냐.” 답변은 같았지만 차가웠다. 그저 내가 나가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래서 마음을 접고 다른 점포로 가려고 했다. 다른 점포도 많으니까.

나가려는 내게 “좀 전에 본사에서 다녀갔다”는 한마디를 해줬다. 알겠다고 대답하고 나왔다. 내 뒷모습을 향해 혼잣말로 “그냥 알아보러 오신 거구나”라고 했다. 나름의 미안함의 표현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7~8개 브랜드를 확인하고 집 앞 치킨 집에 들어갔다. 마지막 가게였다. 사장님은 내가 이웃 주민이란 걸 알고 있다. 이곳 역시 문제가 없었다. 사장님은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상황에 난감해 했다. 난 수급에 문제없으면 된 거 아니겠나 싶어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미안해했다.

그들에게 난 그저 자신들의 힘든 모습을 담아가야 하는 기자였다. 자신들의 무난하고 조용한 삶을 내가 원치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난 마치 ‘하이에나’와 같았다.

실제로 그날 웬만한 치킨 프랜차이즈를 돌아본 결과 ‘아직까지’ 문제되는 상황은 없어 보였다. 좀 이른 감도 있었다. 취재 내용은 기사화되지 않았다.

만약 그날 마지막 가게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를 들었다면 난 즐겁게 보고를 올릴 수 있었을까. 내일 쓸거리가 생겨서 홀가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날이 따뜻할 땐 사람이 말썽을 피우더니 추워지니 가축들이 말썽을 일으킨다. 정확히 말하면 가축들을 관리하는 자들의 몫이겠다. 그렇게 안팎에서 치인 자신들의 지친 냄새를 맡고 찾아온 기자가 당연히 반가울 리 없다.

그래서 “괜찮다, 괜찮다”, 이런 말이 습관이 된 것은 아닐까. 혹여나 아파도, 괜찮냐고 물어볼까 싶어 아픈 내색을 안 하는 것은 아닐까.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려 시작한 생활이었는데, 쉽지 않은 겨울을 보내고 있다. 그들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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