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貨殖具案(화식구안)] 이 세모, 귀뚜라미가 들어오네

입력 2017-12-2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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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2017년도 이제 세모(歲暮)를 앞두고 있습니다. 아울러 2015년부터 3년간이나 써온 ‘화식구안(貨殖具案)’ 칼럼 역시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올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칼럼으로는 경제나 금융 주제가 아닌, 필자가 좋아하는 한문 칼럼으로 주제를 골라봤습니다.

중국 역사상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시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중국의 가장 오래된 시가(詩歌)문학을 대표하는 ‘시경(詩經)’에 등장하는 세모의 시는 바로 당풍(唐風)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실솔3장(蟋蟀三章)’입니다. 실솔이란 귀뚜라미를 의미하는데, 3장으로 이루어진 이 시의 제1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蟋蟀在堂(실솔재당) 귀뚜라미가 마루에 있으니

歲聿其莫(세율기모) 해가 드디어 저물었도다.

今我不樂(금아불락) 이제 우리가 즐거워하지 않으면

日月其除(일월기제) 해와 달이 (우리를 버리고) 가리라.

無已大康(무이태강) 너무 편안하지 아니한가.

職思其居(직사기거) 자신의 직책을 생각하여

好樂無荒(호락무황) 좋아하고 즐거워함을 지나치지 않음이

良士瞿瞿(양사구구) 어진 선비의 두려워하고 조심함이니라.

귀뚜라미가 마루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당시 주(周)나라의 또 다른 지방이었던 빈(豳)지방의 노래 빈풍(豳風) ‘칠월(七月)’을 보면, ‘七月在野(칠월재야: 칠월이 되면 귀뚜라미가 들에 있고), 八月在宇(팔월재우: 팔월이 되면 집안에 들어오고), 九月在戶(구월재호: 구월이 되면 문 안으로 들어오고), 十月蟋蟀(시월실솔: 시월이 되면 귀뚜라미가), 入我牀下(입아상하: 내 침상 아래로 들어오느니라)’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벌레인 귀뚜라미가 날씨가 추워짐에 따라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인 집을 찾아 들어오는 것을 통해 한 해가 지나감을 표현한 것인데, 빈풍의 노래들은 하(夏)나라의 월력인 하력(夏曆)을 사용한 관계로 한 해의 마지막 달이 12월이 아닌 10월이란 전제하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실솔’의 ‘귀뚜라미가 마루에 있다’는 표현은 하력으로 따지면 9월에서 10월 초, 주나라 이후 사용된 주력(周曆)에 의하면 11월에서 12월 초 정도의 시점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는 한 해의 노고를 돌아보며, 즐기되 지나치지 않을 것을 강조한 내용입니다. 이 시는 이후로 많은 곳에서 인용되는데, 주로 한 해의 마지막을 나타내는 세모, 또는 선비의 스스로를 다지는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중국 시가문학사상 최초로 등장하는 오언시인 ‘고시19수(古詩19首)’ 중 ‘동성고차장(東城高且長)’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四時更變化(사시경변화) 사계절은 변화하기 마련이라지만,

歲暮一何速(세모일하속) 연말이 돌아옴은 어찌 그리 빠른가?

晨風懷苦心(신풍회고심) ‘시경’ 신풍편(晨風篇)에는 버림받은 신하의 괴로움을 나타내고 있고(벼슬 못하는 괴로움),

蟋蟀傷局促(실솔상국촉) ‘시경’ 실솔편(蟋蟀篇)에는 구속되어 살아감(局促)을 상심하는 뜻을 나타내고 있네(벼슬살이하는 괴로움).

조선시대 기대승(奇大升)의 고봉집(高峰集) ‘천상추기근(天上秋期近)’에서는

亹亹送流年(미미송류년) 세월 갈수록 자꾸 흐르는 해를 전송하게 되는구나.

奔走紅塵裡(분주홍진리) 세상 풍진 속에 혼자 분주하니

空吟蟋蟀篇(공음실솔편) 부질없이 실솔편만 읊조리누나.

라고 하고 있습니다.

3년간 써온 화식구안 칼럼을 마감하니 그동안 써온 많은 원고들이 사실은 부질없는 ‘공음(空吟)’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고, 그에 따라 ‘실솔편’을 나도 모르는 사이 다시금 읊어보게 됩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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