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10년 ④] 당국, 도이치 사고땐 '부당이득' 이라더니...키코 유독 소극적

입력 2017-12-2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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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은행 등 11곳 ‘입김’ 무시 못해… 피해 기업들 대부분 힘없는 中企

비정형 파생상품 거래로 인한 소비자 피해 사건 처리에서 금융감독원은 유독 키코에 대해서만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상품 자체의 합리성과 은행의 판매 시 책임 여부 등 원칙보다는 연루된 은행이나 피해기업의 지위, 소송 여부 등 외부적 요인에 휘둘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5년 금감원은 도이치은행의 국내 공기업을 상대로 한 비정형 파생상품 거래 검사를 진행하면서 당시 금융감독위원회에 피해규모를 구체적으로 파악해 보고했다. ‘2005년 제13차 금융감독위원회 의사록’에는 공기업들이 외국계 은행과의 비정형 파생상품 거래에서 기존 정형 파생상품 거래보다 추가 부담한 비용이 약 7배에 달한다고 명시돼 있다. 금액 규모로는 1억2000만 달러 수준이다.

그러나 이투데이가 취합한 2008년 이후 금융당국의 키코 관련 발표자료들을 보면 금감원은 단 한 차례도 이러한 피해상황 비교를 진행한 적이 없다. 단순히 각 은행이 기업과 맺은 키코 계약에 대해 보고를 받고 이를 토대로 키코에 한정한 손실 규모를 파악했다. 기업이 기존 선물환 거래보다 키코에서 몇 배의 손실을 보았는지를 추적하는 것은 은행의 폭리 여부를 판가름하는 대표적인 척도다.

현재 공식적으로 집계된 키코 피해 규모는 2010년 6월 자료가 마지막이다. 당시 금감원은 은행에서 받은 자료를 취합해 총 738개 기업에서 3조2247억 원 규모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달 초 키코 공동대책위원회가 금융위 요청으로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58개 키코 가입 업체의 피해금액만 9642억 원에 달했다. 이로 인한 이자비용만 2911억 원, 키코 사태로 인한 계약 취소와 거래 지연 등 2차 피해 금액 추정치는 4868억 원이다. 금감원은 738개 업체에서 3조 원 대 피해를 파악하는 데 그쳤지만 실태조사 결과, 58개 업체에서만 2조 원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금감원이 도이치 사태 때와 달리 은행 제재는 물론 피해상황 파악조차 소극적인 데는 은행·기업과의 관계, 소송 진행 상황, 자체 적발 사건 여부 등 외부적 요인이 우선시 된 것으로 보인다. 2005년 비정형 파생상품 사고 당시 연루된 은행은 도이치·BNP파리바·바클레이즈·JP모건 등 외국은행의 서울지점 4곳에 불과했다. 반면 키코 사태에서는 KB국민·우리·신한·하나·산업·기업 등 대형 시중은행과 국책은행은 물론이고 외환(론스타)·씨티·SC제일 등 외국계 은행, 지방은행들까지 총 11곳이 연루됐다.

비록 증권선물위원회를 거치며 제재 수위가 낮아지긴 했지만 금감원은 당초 도이치은행에 3개월 비정형 파생상품 영업정지라는 강력한 제재를 내렸다. 키코 사건에도 비슷한 대응을 했다면 국내 15개 내외 시중은행 중 대부분의 비정형 파생상품 거래가 한 번에 정지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날 뻔한 셈이다. 키코 이후인 2010년 바클레이즈와 JP모건의 비정형 파생상품 판매에 대해서도 금감원은 ‘기관경고’ 조치를 했지만 유독 키코 연루 은행들만 ‘기관주의’를 받는 데 그쳤다. 현행 규정상 기관주의가 3년간 3회 누적돼야 기관경고로 격상되며 기관경고 이상에서만 사업 인가 등에서 실질적인 제재 효력이 있다.

키코 사태 당시 BNK지주 계열 금융회사에 근무했던 박선종 숭실대 교수는 “키코 관련 토론회에 초청되거나 강연을 하는 등의 활동에 대해 은행연합회를 통해 회사로 압력이 들어오는 느낌도 받았다”며 “금융당국에도 은행들의 막대한 영향력 행사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도이치 사건 피해 기업은 한국도로공사, KTX, 한국토지공사, 한국주택공사 등 공기업들로 국회에서도 예의주시한 것과 달리 키코 피해 기업은 목소리가 모아지기 힘든 중소기업들이었다는 점도 감독당국의 안일한 대처 원인으로 꼽힌다. 또한 도이치의 경우 금감원이 은행 정기검사 중 자체적으로 적발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제재에 자신감을 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반대로 키코는 이미 터진 문제를 수습해야 하는 상황에서 금감원이 책임 있는 제재를 미루고 지나치게 법원 소송 눈치만 봤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금감원의 키코 제재심은 2009년 9월부터 2010년 8월까지 5차례나 열린 후에야 결론을 냈다. 당시 씨티은행장이었던 하영구 전 은행연합회장은 키코 1심 판결이 윤곽을 드러낼 때까지 제재를 유보해달라 공식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금융위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는 이러한 금감원의 이중적 사건처리에 대해 지난 20일 공식 보고서를 통해 강하게 비판한 상황이다. 윤석헌 금융행정혁신위원장은 “키코 사태는 감독당국이 금융회사의 이익과 수익성을 소비자보호보다 우선해 처리한 대표적인 사례”라며 “감독당국의 역할 실종으로 은행이 고객에게 치명적인 손실과 피해를 끼쳤다”고 말했다. 감독당국이 중개기능 책임을 다하지 않은 금융회사를 강하게 제재해 키코 피해 확산을 막았어야 했지만 이를 소홀히 해 피해기업 수를 크게 늘인 책임이 있다는 점도 보고서에 적시됐다.

그러나 금감원은 혁신위 발표 다음날인 21일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키코 피해기업으로부터 분쟁조정 신청을 접수하고 중재안을 도출하겠다는 이행계획을 발표하는 데 그쳤다. 과거 제재에 대한 해명이나 반성, 재조사 방침은 포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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