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의 손편지] 겨울 과수밭에 거름을 얹으며

입력 2017-12-2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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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초보 농사꾼에 머물고 있는 내게 주위 분들이 종종 농담을 건네곤 한다. “지금은 농한기이니 뜨끈한 아랫목에서 고스톱 치고 섯다판 벌일 때 아닌가?” 그럴 때마다 “엉덩이 지지며 세월아 네월아 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일머리를 제대로 몰라 우리 밭은 일 년 열두 달 농번기예요”라고 얼버무리고 만다.

물론 지나가는 고양이라도 불러 세워 일을 거들라 하고 싶다는 농번기만큼의 분주함은 아닐지라도, 겨울이라 해서 밭에 할 일이 없는 건 아니다. 12월 들어선 7년생 금송에 거름을 얹어주고,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감나무 대추나무 매실나무 아래에도 두어 해 묵힌 퇴비를 얹어주고 있다. 이렇게 해주면 겨우내 눈비 맞으며 땅이 얼렸다 풀렸다 하는 동안 거름기가 땅속으로 스며들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과수마다 가지에 물오르고 잎눈 꽃눈 틔우는 봄이 오면 뿌리가 알아서 땅속 양분을 찾아 먹는다는 것이 동네 어르신들의 말씀이다.

그렇지, 식물이 겨울잠을 자는 동안 다가올 봄을 위해 이런저런 준비를 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우리네 인생살이에도 그대로 유효한 듯하다. 꽃 피고 열매 맺으려 할 즈음, 실한 열매 따고 싶은 욕심에 마음이 급해져 거름을 얹어봐야 피가 되고 살이 되기엔 이미 늦어버리듯, 인생에서도 별 준비 없이 튼실한 열매만 기대한다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별것 아닌 시험 공부도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고 닥쳐서 당일치기로 치르고 나면, 결과도 신통치 않은 데다 나중에 남는 것도 거의 없어 허망함과 자괴감이 몰려왔던 건,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인생 100세 시대, 노후 준비도 닥쳐서 서두르지 말고 부부 나이를 합산해 100살이 되면 인생 2모작의 후반기를 준비해라. 결코 이르지 않다”는 전문가의 조언에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겨울 동안 게으름 부리다 미처 봄을 준비하지 못한 농사꾼이라면, 땅에도 좋고 우리 몸에도 좋은 퇴비 대신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는 화학비료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효과는 신속할지 몰라도 길게 보면 지력(地力)도 쇠하게 하고 우리 몸에도 해가 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세종시 전동면 청송리엔 ‘진짜 잘생긴’ 복숭아나무가 즐비하게 늘어선 농장이 있다. 그 일대가 복숭아 산지라 곳곳에 복숭아밭이 널려 있는데, 복숭아밭인지 배밭인지 구분조차 못하던 시절엔 모든 과수밭이 비슷비슷하게 보였다. 그러다 가지와 잎 모양을 보고 무슨 나무인지 겨우 식별하게 되면서부터는 멋들어진 나무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계신 주인장께서 한 말씀하신다. “제때 거름 얹어주고 가지치기 잘해주고 풀 관리만 제대로 하면 나무는 절대로 거짓말을 안 한다.” 그저 묵묵히 준비하고 기본에 충실하라는 자연의 가르침을, 또 한 해를 보내며 새삼 가슴에 차곡차곡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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