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독서산책] 질 리포베츠키 ‘가벼움의 시대’

입력 2018-01-0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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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혁명이나 해방을 믿지 않는다

가벼워도 너무 가벼운 시대가 됐다. 가벼움을 향한 전진은 앞으로도 멈춰 설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옳고 그름을 따져볼 수도 있지만 가벼움이 우리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만큼 가치가 있다.

철학과 교수인 질 리포베츠키의 ‘가벼움의 시대’는 문명의 중심축 가운데 하나로 중요성을 띠기 시작한 가벼움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한 책이다. 다양한 각도는 책을 구성하고 있는 8개 장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경제와 소비 △몸 단장하기 △패션과 여성성 △예술 속의 가벼움 △건축과 디자인의 가벼움 △자유와 평등 그리고 가벼움 등으로 이뤄졌다.

독자 가운데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가벼워지고 있다는 점을 못마땅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저자의 연구를 참조하면 우리만의 현상이 아니라 범세계적 현상이자 새로운 문명의 특성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처럼 가볍고, 유동적이고, 빠르게 이동하는 물질세계에서 살았던 적은 결코 없었다. 가벼움이 이만큼 기대와 욕망, 강박감을 만들어 낸 적도 결코 없었다. 가벼움이 이만큼이나 많이 사고팔게 만든 적도 결코 없었다.” 하지만 이런 가벼움을 찬양하는 시대가 비단 지금만의 일은 아니다. 일찍이 프리드리히 니체는 “가벼운 것이 좋은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인 적이 있다.

가벼움을 불러일으킨 핵심적인 요인은 무엇일까. 세계와의 관계가 극단적으로 개인주의화되는 현상이 가벼움이란 혁명을 불러일으킨 주요 원동력이 됐다. 저자는 “개인들은 종교와 가족,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분리되고’ 풀리고 이탈해 마치 사회적으로 부유 상태에 있는 원자들처럼 기능한다. 그러면서 역설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말한다. 이제 사람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이상적인 나라를 기다리지 않는다. 더 이상 혁명, 해방 등을 믿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냥 가벼움을 꿈꿀 뿐이다”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앞으로 가벼움은 어떻게 변모될까. 가벼움은 스쳐가는 유행이 아니라 새로운 부류의 문명을 구축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바로 ‘가벼운 것의 문명’이다. 저자의 전망은 이렇다. “이 문명은 이제 겨우 시작되었을 뿐이지만,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영역을 확장해 가면서 새로운 위업을 달성하고, 새로운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가벼운 것의 하이퍼모던한 혁명은 클라우드 컴퓨팅에서 바이오테크놀로까지, 나노 물체에서 첨단 기술 제품까지, 날씬함에 대한 숭배에서 가벼운 먹거리까지, 활강 스포츠에서 긴장 해소 테크닉까지, 패션 경향에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가벼움은 하찮고 무의미한 유행이 아니라 총체적인 사회적 사실로 자리 잡고 있으며, 세계를 변화시키는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다. 하지만 가벼운 것의 문명은 결코 가볍게 사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사회적 규범의 무게는 가벼워졌지만 삶은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업, 불확실성, 빠듯한 일정, 삶의 무게감은 훨씬 묵직해지는 시대가 됐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뜩 떠오르는 것은 가벼움은 정치 지형도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란 점이다. 시민들은 먼 미래보다 가벼운 즐거움을 선사하는 정치인이나 정책에 후한 점수를 주는 시대가 펼쳐질 것이란 점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에게 불편한 현상이지만 피할 수 없는 가벼움의 시대를 잘 조명한 책이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세상 변화를 바라볼 수 있게 돕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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