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숭례문 붕괴와 경제지상주의

입력 2008-03-0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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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호 숭례문이 완전 소실, 붕괴되고 말았다. 세계 열두번째의 무역대국이고 연 6%의 경제성장을 호언해온 나라가 국가적 보물 1호에는 달랑 소화기 8대만 놓고 방치해 왔다는 사실, 또한 국보 1호를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는 1년 예산 규모가 23조원이 넘는 국제적 도시인데도, 국보 1호는 밤이 되면 경비원도 없이 노숙자의 안식처로 되어 오다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했으니 말문이 막힐 정도다. 뿐만 아니다. 숭례문 관리에 연간 17억원을 들이는 결정을 했던 지방자치 단체장마저 불이 나 타버리자 적반하장격으로 국민 모금부터 앞장서 주장하고 나서고 있으니 선진국들로 부터 그야말로 '기본이 안 된 나라'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된 형국이다.

한심한 것은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태안 기름오염 사고도 발생한 지 두 달이 넘었다. 큰소리치던 정부의 방제능력이나 선박 관리능력뿐 아니라 ‘관리의 삼성’이라는 한국 대표기업의 안전관리 부재를 재확인한데다 재발을 막기 위해 우리 사회가 구체적으로 무슨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는지 아직껏 확인된 바도 없다. 문제는 국가와 정부, 그리고 총체적으로는 국민의 정신자세다. 바로 이런 겉치레와 안전 불감증이 앞으로도 고조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 더욱 걱정이다.

이른바 '실용주의 정부'를 표방한 대통령직 인수위가 발표한 새 정부의 192개 국정과제를 살펴봐도 안전한 사회 구축 의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에 기존에 있던 법적 안전장치조차 무시하는 특별법을 만들면서까지 한반도 대운하는 추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런 정신자세로 과연 무엇을 제대로 해 낼 수 있을것인지, 강한 의문이 앞선다. '대운하'에 대해서도 국민의 1% 미만인 부동산 투기세력과 건설업자가 부추기는 정치인들을 제외한 나머지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지금과 같은 국가사회적 정신상태라면 한반도 대운하 같은 철저한 국토 파괴, 자연파괴의 후유증은 아무리 국민 모금을 하더라도 복원이 불가능한 일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대선의 최대 화두는 경제였다. 그래서 거의 모든 후보들이 높은 성장률을 제시하고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사태'들에서 확인되었듯 이번 대선의 최대 쟁점은 경제가 결코 아니어야 했다는 비판론들도 만만치 않다. 한번 주위를 살펴 보자. 많은 대학생들이 공무원 시험 준비에 바쁘고, 토플 등 영어시험에 목을 매달 정도로 의사, 교사 등 안정적인 자격증 따기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지구화 시대에 주요한 경쟁력의 원천이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력이라고 할 때 과연 현재와 같은 사회 시스템을 가지고 10년 혹은 20년 후에 기업에 필요한 창의적 인력들을 확보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국제경쟁력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또한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그 국제경쟁력의 질곡에 있다고 하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우리의 경제가 너무 천민적으로 가혹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할 필요성도 그래서 나온다. 이는 물론 거시적 합리성에는 반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미래의 한국경제와 사회의 주역들이 만사를 제치고 ‘안정적인 직장찾기’를 위한 사투를 벌이는 이 ‘사회적으로 지속되어서는 않될’ 현실은 진정한 정치가 뚫어주어야 할 큰 몫이다. 이것은 경제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 역시 정부와 정치의 의식수준의 문제로 볼 수 밖에 없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한국경제는 점차 이른바 ‘자산주도형 투기경제’로 되어가고 있다. 돈 있는 사람들이 생산적으로 돈을 벌려고 해야 하는데, 적당히 부동산 투자나 하고 안정적인 건물임대주로 살아가려고 하고, 로또 복권하듯이 증권투자에 매달려 너나 나나 할 것없이 모두들 분주하다. 국가사회의 분위기가 잘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창의력과 혁신된 상상력으로 공정 경쟁을 하려 하지않고 생산성 없는 일에 몰두들만 한다면, 그 사회는 이미 썩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경제'도 아니다.

물론 세계경제의 거대한 유동적 상황 속에서 한국경제의 적절한 자리를 발견하려는 노력, 또한 경제의 신성장동력을 발견하려는 노력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문제는 경제야' 하면서, 무조건 고성장의 문제를 소리높혀 접근하고 있다. 한편에서 시장자율을 내걸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경부운하와 같은 거대한 국가적인 토목사업을 벌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성장 중심의 경제마인드를 부동산 문제나 교육문제에 대해서 마저도 적용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 현재 대한민국이 당면한 문제의 본질에서 빗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옳은 정치'라고 할 수 있겠는가.

현재의 새 정부 정책 기본방향 대로라면 삼성전자가 수조원의 수익을 내더라도 그것은 서민들의 삶과 크게 관계가 없다. 60~70년대 한국경제의 초기산업화 국면에서는 절대적인 성장의 증가가 곧 고용의 창출, 실업 축소 등을 낳았다. 경제의 규모가 성장하면서 서민들이 먹고사는 데 비빌 언덕들이 많아졌었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히 60~70년대의 고도성장정책을 복원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되는 일이 아니게 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성장 그 자체보다도 성장의 사회적 시스템 문제를 심도있게 고민해야 함을 발견케 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경제'일 것이며 '정치'일 것이다.

참여정부가 이 방향과 관련, 거꾸로는 가지는 않았다고 주장 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했다. 그래서 국민들이 실망한 나머지 민심이 이반한 것이다. 결국 현재 ‘경제’라고 표현되는 문제가 대선에서 최대의 이슈가 된 것은, 지구화시대 한국경제의 어려움을 웅변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지구화시대의 그 어려운 조건에서 ‘미래지향적으로, 또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의 '진실된 기반'을 구축해 나가지 못해서 나타난 결과이다. 이명박 정부라고 해서 별 수 가 없을 것이란 시중의 비판론들도 그래서 고개를 들게된다. 따라서 진정한 새로운 경제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는 곧 정치에서 주어질 수 밖에 없게 되어있다.

또다른 예를 들어 보자. 새 정부의 인수위는 최근 신용불량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여러 정책들을 내놨다. 금융기관들로 하여금 10조원 규모의 신용회복기금을 조성, 연체자 혹은 저신용 고금리 부담자의 삶을 보살펴 주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는 신용불량자 문제를 바라보는 기본 시각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신용불량자 문제는 금융기관의 '팔을 비틀어서' 해결하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닌 것이다. 금융기관이 보유한 연체기록을 삭제하라는 이런 발상이 나오는 이유는 결국 새 당국자들의 얄팍한 문제의식에서 연유한다.

신용불량자 문제는 개인도산 제도를 정비하는 쪽으로 풀어야 마땅하다. 그것이 국가의 법질서와도 부합하고 시장경제의 원리와도 충돌하지 않는 방법이다. 그리고 채권자와 채무자의 균형을 잡는 데도 훨씬 우월한 방법이다. 도산제도가 채권자의 채권을 변제받을 권리와 채무자의 지급능력을 조화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경제'의 기반구축 노력 보다는 하루하루 세밀한 숙고도 없이 당면하면 당면하는 대로 즉석처방에 연연하는 꼴이다. 이런 점에 대해서 국회도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한국 정치의 빗나가고 있는 현주소를 웅변하고 있다. 이것이 큰 문제인 것이다.

기본 시각이 잘못되었기에 세부 정책 선택 역시 곳곳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연체자에게 원금을 전부 상환하라는 조건도 그 좋은 예중의 하나다. 변제능력이 거의 없는 연체자에게 원금을 다 갚으라고 하면 죽을 때까지 갚으라는 말밖에 더 되겠는가. 이것은 사실상의 '노예제'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진국들은 이런 '노예제 개념'을 막기 위해 법원에서조차 3년이 넘는 변제계획을 작성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시장경제의 원리를 존중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멋있고 과단성 있는 모습을 보이려는 유혹을 억누르고, 제 원리와 법질서를 존중하는 인내가 있을 때야만 그 원리의 정착도 가능해 진다. 과연 이명박 정부는 해낼 수 있을까. 적어도 당선 후 보름도 지나지 않은 지금까지 보여준 각종 현상들의 증후군은 일단은 부정적이다.

이런 문제제기는 문화분야이긴 하지만, 작가 박완서씨의 주장에서도 명료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의 말을 인용해 본다. "나는 어릴적 (숭례문)의 기왓골과 등에만 살짝 쌓여서 기와의 선이 화선지에 먹물로 그은 것처럼 부드럽게 번져 보이는 게 그지없이 정답기도 했지만, 전체를 한 덩어리로 볼 땐 산처럼 거대하고 준엄해 내 옹색한 시야를 압도하고도 넘쳤다. 나는 거의 종교적인 경건으로 예배하듯이 남대문을 우러르고 돌아서서 남으로 걸었다. 이상하게도 훨씬 덜 절망스러웠다. 어떤 극한상황에서도 우리를 덜 절망스럽게 하고 희망과 꿈을 갖게 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문화와 역사라는 것의 힘이다. 그런데, 방화범의 범행 동기에서부터 사후 대책을 책임져야 할 고위층들이 하는 소리란, 입만 열면 내뱉는 “돈, 돈, 돈” 이어서, 이 사회에 팽배한 경제지상주의의 실상에 대한 비판을 금할 수 없다. 백범 김구 선생의 글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의 첫머리' 에도 '오직 한없이 우리 국가가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하질 않았는가"

이런 잘못되어 가고 있는 '국가정신'의 증후군들은 그 외에도 도처에 늘려있다. 정신적 기초가 잘못되어 가고 있으니 후유증이 곳곳에서 역기능을 빚어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최근 우리 민족사의 최대 국경일 3.1절을 계기로 전국 곳곳에서 문화재 및 애국선열들의 유적지 파괴, 훼손, 방치등의 사례가 잇따라 밝혀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좀 더 깊이 보면 '민족혼'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국민통합이 흔들리고, 민족혼이 무너져도 안일하게 경시하면서, '돈, 돈'과 '경제성장'만 외쳐댄다면 이 땅의 후세들이 걸어갈 국가의 미래는 참으로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숭례문의 붕괴'에서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를 경시하는, 오도된 '경제지상주의'가 빚어내고 있는 국가사회적 현실을 지금 생생히 목격하고 있다.

이병도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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