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소녀상 이전 이면합의는 원천 무효

입력 2018-01-12 10:48 수정 2018-07-0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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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를 선언하고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이를 지지하는 여론에 뜻을 같이하면서도 정부는 파기 선언이 가져올 외교 무대의 후폭풍을 고려해 사실상 백지화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정부 입장을 일면 이해하면서 사실상 백지화를 위한 전혀 다른 제안을 하고자 한다.

이전 정부의 12·28 위안부 합의는 1965년 한일협정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피해 당사자들의 배상청구권을 국가가 무슨 권한으로 포기할 수 있는가”라는 지적은 위안부 합의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국제법적 문제는 차치(且置)하고 소녀상 이전·철거 합의는 또 다른 문제다.

소녀상의 정확한 명칭인 ‘평화의 소녀상’은 김운성·김서경 부부 조형예술가의 작품이다. 소유권은 정대협(挺對協·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있지만, 저작권은 이들 부부에게 있다. 저작권자는 ‘저작물의 내용·형식 및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 즉 동일성유지권이라는 저작인격권을 갖는다.

소녀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선(視線)이다. 시선은 대상을 전제로 하므로 소녀상의 가장 중요한 예술적 가치는 일본대사관 건너편인 바로 현재의 장소에 있는 셈이다. 장소를 떠나 존재할 수 없는 작품을 장소 특정적 예술(site specific art)이라 한다. 소녀상은 일본대사관 앞을 떠나 미술관 등 다른 장소로 옮겨지는 순간 생명을 잃게 된다. 따라서 소녀상 작가는 소녀상이 현 위치에서 이전당하지 않을 권리를 인격권으로서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천경자 화백의 붓을 꺾게 만든 ‘미인도’ 위작 논란은 천 화백 사후에도 지속되고 있는데, 그 핵심은 ‘내 작품이 아닌 것에 내 이름을 붙이지 말게 할 권리’ 침해 문제로서 작가의 인격권과 관련된다. 이렇듯 예술가에게 인격권은 재산권과 비교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배상청구권 같은 재산권과 달리 인격권을 제3자인 한·일 양국 정부가 함부로 결정할 수는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근혜 정부는 정부가 처분할 수 없는 것을 처분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합의한 것이니, 이면 합의는 법적으로 말하면 불능(不能) 계약인 셈이다. 예컨대 하늘의 별을 따 주겠다고 한 것이나 노예가 되겠다고 한 것은 물리적 또는 법적으로 불가능한 약속으로, 이런 합의는 애초에 무효인 계약이다. 따라서 이행하지 않는다 해서 합의 위반이라고 할 수 없다. 이전 요청에 작가가 거부하면 정부는 이를 강제할 수 없고, 일본 정부 또한 우리 정부에 불이행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소녀상 문제로 양국 간 첨예한 갈등이 있을 때 일본 정부는 ‘평화의 소녀상’이 아닌 ‘위안부상’으로 부르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예술작품의 이름을 유지하는 것은 저작인격권의 한 내용으로, 일본 저작권법에도 동일한 것이 있다. 거북하다 하여 작품 이름을 함부로 바꿔 부르는 것은 법 위반이며 일국의 정부가 공식적으로 할 일은 아니다.

심지어 일본에서 소녀상을 음란물로 둔갑시킨 사례가 있었다. 야만의 극치다. 미키마우스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한 침대에서 혼음(混淫)하는 장면 같은 것은 디즈니사가 철저하게 법적으로 막아내고 있다. 동심(童心)에 상처를 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소녀상에 대해 공감은 못할망정 외설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현지 소송을 통해서라도 막아야 하며, 일본 내 주의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

국민적 공분을 낳은 위안부 협상의 이면 합의는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소녀상 작가의 동의 없는 이전 합의는 그 자체가 무효이므로 파기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수 있다. 일본의 진정한 사과만이 소녀상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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