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10년에 걸친 하이트진로의 부당지원행위로 공정거래질서가 심각하게 훼손된 것으로 판단했다.
직거래가 통상적인 관행이던 상품 거래 분야에 서영이앤티(E&T)를 끼워 넣어 상대방의 거래처 선택을 제한하고, 사업 경험이 전무한 서영E&T가 일시에 유력 사업자 지위를 확보하게 됐기 때문이다.
15일 공정위에 따르면 서영E&T는 2000년 설립 이후 생맥주 기기를 제조해 하이트진로에 납품해오던 중소기업으로 2007년 12월 하이트진로 박문덕 회장의 차남인 박태영이 지분 73%를 인수한 뒤 하이트진로 계열사로 편입됐다.
하이트진로는 인수 직후인 2008년 4월 하이트진로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과장급 전문 인력 2명을 파견하고, 급여 일부를 대신 지급했다. 이들은 서영E&T 본사 핵심업무인 기획, 재무, 영업 등을 수행하며 하이트진로와의 각종 내부거래를 실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맥주용 공캔을 생산하는 삼광글라스로부터 직접 구매하던 것을 서영E&T를 거쳐 구매하면서 실질적 역할 없이 중간에서 수수료를 받는 ‘통행세 챙기기’를 2012년말까지 지속한 것으로 공정위는 확인했다. 통행세는 공캔 1개당 2원으로, 하이트진로는 해당 기간 중 연평균 4억6000개를 구매했다. 단순 계산으로 9억2000만 원에 달하는 통행세를 챙긴 셈이다.
이에 따라 서영E&T는 매출 규모가 2007년 142억 원에서 2008~2012년 연평균 855억 원으로 6배나 급증했고, 해당 기간 당기순이익의 49.8%에 달하는 이익(56억2000만 원)을 제공받았다.
2013년 1월부터 2014년 1월 말까지 하이트진로는 공캔 통행세 거래를 중단하는 대신 삼광글라스에 공캔 원재료인 알루미늄코일을 구매할 때 서영E&T를 끼워 넣고 통행세를 지급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서영E&T는 1년 1개월 동안 590억 원에 달하는 매출을 확보하고, 해당 기간 영업이익의 20.2%에 달하는 이익을 제공받았다.
2014년 2월 하이트진로는 서영E&T가 자회사인 서해인사이트(생맥주기기 유지ㆍ보수업체) 주식 100%를 키미데이타에 25억 원에 매각할 수 있도록 우회지원한 사실도 적발됐다.
총수 2세인 박태영은 2012년 4월부터 하이트진로의 경영전략본부장으로 재직하며 서해인사이트 주식 고가매입에 직접 관여했다.
특히,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4월 공정위 현장조사 과정에서 대표이사 결재 및 총수 2세 관여사실을 숨기기 위해 고의로 용역대금 인상계획 결재란과 핵심내용을 삭제한 허위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식ㆍ고가매각시 매수자와의 합의에 따라 서해인사이트에 지급하는 생맥주기기 유지ㆍ보수 수수료를 높여주기로 결재한 문서다.
하이트진로는 키미데이타가 일정 기간 내 주식인수대금전액을 회수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이면약정을 제안ㆍ합의했고, 실제로 매각 이후 서해인사이트에 생맥주기기 AS 업무 위탁비를 대폭 인상해줬다.
2014년 9월 하이트진로는 삼광글라스에 공캔과는 전혀 무관한 글라스락캡(밀폐용기 뚜껑) 구매시 서영E&T를 끼워넣고 통행세를 지급하도록 요구했다. 이는 공정위 조치가 임박한 2017년 9월말 중단됐다.
해당기간 동안 서영E&T는 323억 원에 달하는 매출을 확보하고, 해당 기간 당기순이익의 1309.9%에 달하는 이익(18억6000만 원)을 제공받았다.
공정위는 하이트진로 총수일가의 일감몰아주기 결과 서영E&T는 2011년 현재 하이트홀딩스의 지분 27.66%를 보유한 그룹 지배구조상 최상위 회사가 됐다고 밝혔다.
서영E&T는 무상증여ㆍ분할ㆍ합병ㆍ유상증자 등 각종 구조개편을 거쳐 지주회사인 하이트홀딩스 지분을 대폭 증가시켜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올라섰다.
하이트진로는 총수가 단독지배(하이트맥주 26.9% 보유)하던 구조에서 서영E&T를 통해 2세와 함께 지배하는 구조로 전환돼 총수 2세로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토대를 제공했다는 설명이다.
공정위는 부당 내부거래에 대해 과징금 107억 원과 하이트진로, 박태영 하이트진로 최대주주, 김인규 대표이사, 김창규 이무언을 고발하고, 하이트진로의 허위자료 제출에 대해서는 법인에 1억 원, 해당직원 1000만 원의 과태료를 별도로 부과했다.
하이트진로는 하이트진로홀딩스(지주회사), 하이트진로(주력회사) 등 12개 계열사가 소속돼 있으며, 소주와 맥주 등 제조업을 영위하며, 국내 맥주시장의 2위 사업자이다. 지난해 전체 매출액 중 소주제품 매출은 49.95%, 맥주제품 매출은 41.63%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1조6371억8500만 원이다.
한편, 하이트진로 측은 "향후 행정소송을 통해 성실히 소명하고 의혹을 해소할 것"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