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흥 KAIST 해양시스템대학원 교수는 19일 KAIST 도곡캠퍼스에서 이투데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한 교수는 줄곧 조선업의 미래를 밝게 전망했다. 그는 “국내 조선업이 잘나갈 때는 돈 버느라 바빠서 구조조정도 못하고, 기술 개발도 못했다”면서 “수주한 물량을 빨리 만들어서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인데, 지금처럼 시간과 인력이 남아돌 때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조직을 개편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조선업이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물결을 맞이해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 정책의 큰 틀이 마련되기 전까지 조선사들이 적극적으로 기술 개발에 앞장서야 한다는 설명이다. 설비와 노동 중심의 조선업에서 벗어나 융·복합 시대를 대비하자는 것이다. 한 교수는 우리 조선사의 저력을 믿고 산업계와 노동계, 정계, 학계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한 교수를 통해 조선업의 현주소와 미래를 들여다봤다.
호황기 때 불황 대비하는 준비 부족
- 조선업이 위기라고 한다. 도대체 어느 정도인가
“조선사들의 도크(선박을 건조·수리하기 위해서 조선소·항만 등에 세워진 시설)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드라이 도크’라고 한다. 어떤 조선사는 도크 두 개가 비어 있다. 도크는 조선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이다. 도크 회전율이 중요한데, 이게 가동을 안 하면 장비라기보단 시설이 되는 거다. ‘물 빠진 수영장’이라고 보면 된다. 그만큼 일거리가 없는 상태다. 2007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을 시작으로 세계 경기도 하강하여 조선업에 위기가 찾아왔다. 중국과 일본은 자국 수요를 상당 부분 흡수하며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고 있지만, 한국은 자국 선사들의 주문량이 적은 탓에 더 큰 불황을 맞고 있다. 2000년부터 2014년까지 이어졌던 국내 조선업 호황기 때 지금과 같은 불황을 대비하는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 국내 조선사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9일 국회에서 ‘조선해양산업 미래 전략 : 독일 경험에서 배운다’라는 주제로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발표자료 중 하나가 ‘조선업 미래예측’이었는데, 희망적인 얘기가 나왔다. 토론회에 참석한 독일 컨설팅 기업 BALance의 브로다(Brodda) 대표는 2005년 전 세계 선박 건조량과 2015년 전 세계 건조량의 총합이 비슷하다고 했다. 건조량이 산 같은 곡선을 나타냈는데, 2010년도가 ‘오버히트’였다. 큰 시각에서 보면 지금은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시점인 것이다. 오버히팅 후유증 때문에 좀 더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조선해양산업의 시황이 급락하고 있는 것은 2006년 이후 과도하게 팽창한 산업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의 일환이다. 비록 현재 부가가치율이 하락하고 있기는 하지만, 독일의 경우는 조선해양 관련 부품소재 산업이나 크루즈선과 같은 부가가치가 높은 선종에 특화해 현재는 어느 정도 산업의 안정을 이뤘다. 그런데 이런 전망이 나와도, 지금은 일부 회사의 보고서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 우리나라도 시장예측 기능이 필요하다. 정책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전문 조직이 있어야 한다.”
獨 정부 , 회사가 기본급 주면 교육비 지원
- 조선업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전반적으로 어려운 때이니 낙담하고 있지만, 지금이 미래를 준비할 시간이다. 시간과 인력이 남아돌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적기라는 것이다. 이럴 때 정부가 나서서 돈을 투입해야 한다. 독일의 경우 정부가 직원 교육에 힘썼다. 회사가 직원을 내보내지 않고 기본급만 주면서 정부의 교육비를 추가하는 방식이다. 회사에서 잘려서 실업급여를 받는 것보다 기본급만 받으면서 정부 교육비를 받는 게 낫다는 것이다. 교육 내용은 전업교육, 4차 산업혁명, 신기술, 자동화, 미래 대비 기술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고급기술, 4차 산업혁명 관련 정책의 큰 틀이 잡히면 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그에 맞게 조직을 개편해야 할 것이다. 이는 대형 조선사나 중형 조선사 모두 해당되는 내용이다. 좀 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접근해 비효율적으로 비대해진 조선업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 독일 등 유럽연합(EU)은 어떤 상황인가
“독일의 경우는 조선해양산업이 호황을 맞고 있어 인력 부족을 토로하는 상황이다. 독일의 경우는 동북아시아에 조선산업을 이양할 때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현재는 중소 조선소 및 조선 분야 기자재 (부품) 산업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독일은 한국과는 다르게, 구조조정 시 대기업의 규모가 축소되고, 중형 조선소 및 조선 분야 부품 기업이 육성됐다. 현재 부품 산업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진행 중이다. 독일은 주요 대상 시장의 변화로, 현재 예를 들어 크루즈선과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에서 많은 수주를 확보해 조선 분야의 인력 부족을 토로하고 있다. 독일과 유럽연합(EU)은 조선해양산업을 성장 산업으로 보고 ‘Blue Growth’ 전략을 추진 중이다.”
지역경제·일자리는 중형사가 큰 몫
- 중형 조선사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동안 조선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대형 조선사에만 맞춰졌다. 그런데 STX조선해양, 성동조선해양 등 상대적으로 중형 조선소가 너무 많이 몰락하고 있다. 정부가 올해 3월 중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하는데, 중형 조선소도 살려야 한다. 중형 조선소는 대형 조선소가 수주하지 않는 일감을 가져와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 이에 대한 관심과 정책·금융적인 지원과 배려가 필요하다. 이렇게 확보한 경쟁력을 기반으로 세계 시장에서 중국이나 일본의 조선소들과 경쟁해야 한다. 일본은 조선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형 조선소를 잘 지켜냈고, 현재 그들은 세계 경쟁력을 갖춘 조선소로 도약해 한국과 경쟁하고 있다.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 여전히 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
- 4차 산업혁명, 조선업에 독일까 약일까
“조선 산업도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빠르게 없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군 중 하나다. 그러나 과거 산업혁명 사례를 볼 때 또 다른 형태의 일자리가 조선 산업 내에서 창출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등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기술들이 등장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조선업 내 실업이 크게 증가할 수 있지만, 새로운 일자리를 어떻게 창출하고, 잘 적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업계의 빠른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
勞·使·政·學에 금융·유관 분야 참여
- 조선 4.0 연구모임 대표를 맡고 있다. 어떤 모임인가
“우리 모임은 4차 산업혁명, 일자리 유지와 창출을 동시에 구현하는 한국조선해양산업의 발전 전략을 연구하는 모임이다. 연구모임의 참가 범위는 노·사·정·학계 등 4개의 그룹과 중요한 관련 기관 및 조직이다. 현재 모임의 대표이자, 실무책임자는 정미경 단국대 초빙교수(독일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이다. 우리 모임은 중장기적으로 노·사·정·학계의 참여를 높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민중당 김종훈 의원실을 중심으로 ‘미래산업과 일자리포럼 소속 국회의원단’과 협력을 강화하고 산업통상자원부의 협력을 구하고 있다. 또한 노동조합의 대표로 금속노조와 금속노조 조선노연이 참여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 성동조선해양 노조, STX조선해양 노조도 참여한다. 아울러 고용노동부와의 협력 방안도 찾고 있다. 사측의 대표자로 대형 조선소 중심의 조선해양플랜트협회가 참여하고 있고, 한국조선공업협동조합이나 조선해양기자재공업협동조합 등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학계는 다른 영역의 참여도와 보조를 맞추어 참여를 높이고자 한다. 그 외에도 금융권에선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 지자체 중엔 울산시와 거제시, 조선업의 전방업체 관련 조직으로 가스공사, 석유공사, 해운 관련 기관도 참여를 기대한다.”
◇한순흥 교수는?
한순흥(63) 교수는 4차 산업혁명과 조선해양산업 연구모임인 조선 4.0을 중심으로 산업구조조정, 4차 산업혁명, 일자리 유지와 창출을 동시에 구현하는 한국 조선해양산업의 발전 전략을 연구하고 정책제안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산업계 현장을 직접 방문하면서 특히 △조선 산업 관련 국내에서 논의 및 진행되고 있는 현황 △독일 및 유럽 현황(벤치마킹) △조선해양산업의 국제 동향 △독일 제조업과 중형 조선의 생존 비결과 노동조합의 역할 등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