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우의 지금여기]백기 든 官治, 궐기한 勞治

입력 2018-01-23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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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만 잔뜩 키우다, 울며 겨자먹기로 백기를 들었다. 최근 하나금융지주 회장 선임 과정에서 체면을 구긴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최흥식 금융감독원장 얘기다. 여론전을 통해 관치(官治) 프레임을 적절히 활용한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에게 아마추어식 관치는 통하지 않았다. 김 회장은 금융당국 수장들의 부정적인 평가를 뒤로하고 22일 3연임에 성공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지만, 인선 과정에서 금융당국과의 마찰은 개운치 않다. 다음 수순이지만, 3연임 확정과 동시에 임기 완주 여부가 주목을 받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금융당국 수장들은 ‘말’로만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변죽만 울리다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지난 10년 간 금융회사 CEO로 갈고닦은 내공에 투박한 관치는 맥을 추지 못한 것이다. 이들의 발언처럼 하나금융지주 지배구조에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됐다면 강경하게 검사·감독을 통해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를 제시하면 될 사안이었다. 그러나 금감원이 지적한 회장후보추천위원회 규정을 살짝 바꾸는 정도로, ‘정작 큰 문제는 없다’는 식의 여론만 확산됐다.

오히려 하나금융은 금융감독원이 “특혜대출 의혹 등에 대해 검사를 진행 중이니 인선 절차를 미뤄달라”는 요청을 묵살하는 배짱까지 보였다. 이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면 금융회사가 발전할 수 없다” 며 관치 프레임은 더욱 확신에 찼다.

결국 논란이 확대되자 청와대까지 나섰다. 청와대는 민간금융회사 인사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은 일단락됐다. 금융당국의 체면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꼴이 됐다. 어쩌면 하나금융은 청와대가 이같은 원론적인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예측하지는 않았을까. 어찌됐든 김 회장의 3연임이라는 축제 분위기와 함께 금융당국이 관치를 하려다 청와대 압박에 못 이겨 꼬리를 내렸다는 식으로 해석되는 씁쓸한 뒷 맛을 남겼다.

노동이사제 도입과 청와대의 코드행정도 논란거리다. KB금융 노조가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새로운 사외이사 후보 추천에 나서면서 지난해 말 금융권을 달궜던 노동이사제 이슈에 다시 불이 붙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노동이사제는 근로자 대표가 사외이사로 경영에 참여하는 제도다. 앞서 금융혁신위원회는 민간금융지주회사에 대해 근로자추천이사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라고 권고했다.

노동계는 노동이사제나 근로자추천이사제를 도입하면 최고경영자(CEO)가 자신의 측근으로 사외이사진을 꾸리는 등의 경영 독단을 막고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회사 가치나 주주 이익의 극대화보다 노조에만 유리한 경영 결정이 나올 우려도 크다. 때문에 회사 측은 가뜩이나 고액 연봉으로 ‘귀족노조’ 소리를 듣는 금융권 노조가 CEO 선임이나 임금 인상에 더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며 부정적이다.

그러나 이번 노치(勞治)의 벽은 예상외로 견고한 듯 보인다. 친노조 성향의 정부를 업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사회가 독립성을 잃고 대주주의 거수기 노릇에서 열린 자세로 이를 받아야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산업은 이른바 라이선스 사업이다. 정부가 허가권을 쥐고 있는 업종이다 보니 일종의 공공성을 갖고 있다. ‘금융기관’이란 표현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니 정부가 추진하면 따라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새정부 들어 우려했던 관치의 벽을 넘겼다. 3월 주총을 앞두고 노치의 벽 앞에서 어떠한 결정을 내릴 지, 참신한 뒷 맛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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