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카스트(계급) 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지 70년이 지났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도 기업가들은 귀족 출신으로 가문의 부(富)를 대물림해 자신들만의 거대한 제국을 구축했다. 전통적인 상인 카스트인 바이샤에 속한 가문들은 영국 식민시대부터 이어 내려온 인맥을 바탕으로 오늘날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라제쉬 메타 라제쉬익스포츠 회장처럼 신흥 인도 상인 가문을 상징하는 인물들도 부상하고 있다.
미국 경제지 포춘이 지난해 3월 선정한 ‘2017 글로벌 500대 기업’ 순위에는 인도석유공사(IOC)와 릴라이언스인더스트리즈, 스테이트뱅크오브인디아(SBI), 타타자동차, 라제쉬익스포츠, 바랏석유와 힌두스탄석유 등 7곳이 이름을 올렸다. 주목할 것은 이들 7개 기업이 IOC와 SBI, 바랏석유, 힌두스탄석유 등 국영기업과 릴라이언스, 타타로 대표되는 상인 가문으로 양분됐다는 것이다. 인도 기업 세계를 지배하는 전통적 ‘가문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정유와 화학, 통신 등 인도 핵심 산업을 선도하는 릴라이언스그룹은 재벌 암바니 가문 소유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지난해 11월 암바니 가문이 448억 달러(약 48조 원) 재산으로, 삼성가(408억 달러)를 제치고 아시아 최대 부호 가문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암바니 가문은 다른 인도 재벌들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최근에 부를 축적한 신흥 재벌에 속한다. 현재 릴라이언스를 이끄는 무케시 암바니의 아버지 디루바이가 26세였던 1958년 단돈 5만 루피(약 84만 원)의 종잣돈으로 무역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릴라이언스는 섬유와 석유화학제품, 에너지 등 끊임없이 영역을 확대해 지금의 거대 기업으로 변모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암바니 가문은 서부 구자라트 주를 본거지로 한 상인계급을 뜻하는 ‘바니아(Modh Bania)’ 출신이다. 인도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마하트마 간디도 바니아에 속한다.
150년 역사의 타타그룹을 이끄는 타타 가문은 뭄바이를 근거지로 한 파르시 출신이다. 파르시는 8세기와 10세기 이슬람교의 박해를 피해 이란에서 인도로 이주한 조로아스터교 신도들을 기원으로 하고 있다. 파르시인은 상업이나 무역업에 종사해 막대한 부를 일궜다. 타타 이외 대형 건설업체 팔론지그룹을 이끄는 미스트리 가문과 식품업계의 거물인 와디아 가문이 모두 파르시에 속한다.
라제쉬익스포츠는 전 세계 금(金) 생산량의 약 35%를 차지하는 귀금속 업체다. 라제쉬 메타가 1989년에 형인 프라샨트 메타와 함께 설립했다.
라제쉬 메타가 자신의 기업을 세운 지는 29년에 불과하나 그 뿌리는 아버지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인 자스완트라이 메타가 구자라트에서 작은 보석가게를 열면서 귀금속 사업이 가업이 된 것이다. 라제쉬 메타는 1982년 의사가 되고 싶었던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가업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은행가였던 큰형의 도움으로 1200루피를 대출받아 은(銀) 무역업을 시작했으며 이후 금과 귀금속 매매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당시 인도는 금 생산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으나 메타는 수출용으로는 생산이 가능하다는 정부의 답변에 힘입어 1989년 벵갈루루의 자신의 차고에서 약 10명의 근로자와 함께 작은 공장을 세웠다. 이것이 바로 라제쉬익스포츠의 탄생이었다.
라제쉬익스포츠의 수출은 1998년에 120억 루피에 이르렀다. 라제쉬익스포츠는 2015년 당시 전 세계 최대 금 정련소였던 스위스 발캠비를 4억 달러에 인수해 광산과 정련소, 소매업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대 수직 통합 구조를 갖춘 보석업체로 부상했다. 현재 매출은 약 360억 달러로, 인도 기업 중 5위 규모다. 배준호 기자 baejh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