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의 손편지] 빛바랜 외할아버지 회갑 잔치 사진을 보며

입력 2018-01-2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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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책장 정리를 하다 우연히 흑백 사진첩을 발견했다. 사진첩을 넘기던 중 외할아버지의 회갑 잔치 사진에 눈길이 머물렀다. 사진 속에 아직 막내 동생 모습이 없었던 것으로 미루어 1964년 겨울쯤이었던 것 같다. 사진 한가운데에는 수염을 길게 기른 외할아버지께서 꼿꼿이 앉아 계셨고, 그 앞으로는 사과, 배, 감 등 먹음직스런 과일에 밤, 대추에다 울긋불긋한 사탕까지 고여 놓은 화려한 잔치상이 놓여 있었다.

 외할아버지 바로 옆 자리에는 자그마한 체구의 외할머니께서 고운 한복차림으로 앉아 계셨는데 왠지 슬픔을 감추고 계신 듯한 표정이었다. 아마도 기쁜 날 꼭 함께하고 싶었던 아들들이 생각나 그러셨겠지 싶다. 외할머니께선 6·25 전쟁 중에 생때같은 두 아들을 잃으셨다 한다. 맏아들은 전쟁 통에 생사불명자가 되었고 막내 아들은 학도병으로 나갔다 전사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작은이모를 통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외할아버지 바로 뒤로는 엄마의 고모, 고모부들, 외삼촌, 외숙모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엄마의 이모, 이모부에 사촌 이모들 모습도 눈에 띄었다. 지금은 모두 돌아가신 분들의 살아생전 모습을 흑백 사진으로 뵈옵자니 마치 시계를 거꾸로 돌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외할아버지와 같은 항렬의 친척분들 뒤쪽으로는 외할아버지의 세 딸과 사위가 나란히 서 있었고, 당신 조카와 조카사위 및 며느리들도 사진 한 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사진 앞쪽으로는 당신의 손자, 손녀들이 즐비하게 앉아 있었는데, 외할아버지의 맏손주인 언니와 오빠는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주인공인 외할아버지의 바로 앞에 있었고, 초등학교 입학 전의 나와 여동생은 왼쪽 구석 자리에 쭈그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당시 동생은 짧은 커트 머리를 하고 있었고, 나는 양 갈래로 길게 땋은 머리를 한 번 더 동그라게 묶어 올리는 일명 ‘딸랑머리’를 하고 있었다.

 회갑 잔치상을 거하게 받으신 외할아버지는 사진 속에서도 육십 평생을 살아오신 데 대한 뿌듯함과 가장으로서의 위풍당당함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계셨고, 친척들 모두 외할아버지가 집안의 어른 중 어른임을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이제 세월이 흘러 외할아버지의 손자, 손녀들이 하나둘씩 회갑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선 언니가 5년 전에, 오빠가 3년 전 회갑을 지났다. 여전히 젊고 활력 넘치는 언니와 오빠는 요즘 관행대로 회갑 잔치를 하지 않고 넘어갔다. ‘100세 시대라는데 60세야 이(齒)도 안 났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지만, 고령사회라는 이유 못지않게 집안의 기둥인 어른이 점차 사라지면서, 더불어 생일을 함께 축하해줄 친지들 숫자도 줄어들고 왕래도 소원해지면서, 회갑 잔치 또한 자연스럽게 시들해졌음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 같다. 머지않아 돌아올 내 회갑엔 누구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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