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항암제가 암세포를 직접 겨냥했다면 면역항암제는 환자의 잠든 면역시스템을 일깨워 스스로 종양을 제거하는 3세대 항암제로, 부작용이 거의 없고 내성도 생기지 않는다. 3세대 항암제는 2세대 항암제의 문제점을 개선한 항암제다. 2세대 항암제는 암 세포뿐만 아니라 일반 세포까지 죽이는 등 독성이 강한 1세대 항암제의 한계를 극복, 암 세포만을 식별해 공격하는 능력이 있어 의료 현장에서 각광을 받았지만 약에 대한 내성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면역항암제는 특히 난치성암 치료에 적용 가능한 데다, 환자들의 장기 생존율이 높아 전 세계 항암제 치료의 새 패러다임으로 부상하며 ‘차세대 블록버스터’로 기대되고 있다.
면역항암제 중에서도 올해 글로벌 제약바이오시장의 R&D 주요 이슈 중 하나는 단연 면역관문억제제다. 면역관문억제제는 인체 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해 암을 치료하는 3세대 항암제인 면역항암제의 일종이다.
암세포는 체내에서 면역관문을 조종해 마치 정상 세포인 것처럼 꾸며 면역세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데, 면역관문억제제는 이러한 암세포의 면역관문을 억제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더 잘 인식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때문에 기존 항암제와 비교해 면역항암제는 보다 넓은 암종에 적용이 가능하고, 효능을 보이는 환자군에서는 오랜 기간 지속되는 치료 효과를 보인다.
글로벌 제약산업 분석전문 업체인 이벨류에이트파마도 올해 가장 유망한 신약은 면역관문억제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벨류에이트파마에 따르면 2020년에는 전 세계 면역항암제 시장이 약 4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시형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3년간 글로벌 R&D 시장을 휩쓸고 있는 이슈는 단연 면역항암제”라며 “올해에도 이러한 이슈는 발전된 형태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으며 병용투여 확대, 새로운 면역관문에 대한 연구 심화 등의 방향으로 발전할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현재 면역관문 치료제에 대한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자체 개발 제품이 없다. 이제 초기 임상에 진입하는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이러한 가운데 유한양행이 1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미국 소렌토와 설립한 조인트벤처 자회사 이뮨온시아가 개발 중인 면역항암제 ‘IMC-001’의 임상 1상 시험계획을 승인받아 면역항암제 국산화에 한발 다가섰다.
IMC-001은 암세포 표면에 있는 단백질의 일종인 PD-L1을 표적으로 하는 면역관문억제제다. PD-L1을 표적으로 하는 면역관문억제제가 국내에서 임상을 승인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산 면역항암제 시대가 열릴지 업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대목이다. 유한양행은 “IMC-001 면역항암제는 혁신 신약이지만 국내 현실을 반영한 적정한 가격으로 제공될 수 있을 것”이라며 “임상 1상을 통해 안전성이 입증되면 순차적으로 다음 단계 임상을 통해 약효를 증명할 수 있도록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동아에스티에도 면역항암제는 차세대 먹거리다. 동아에스티는 애브비, 아스트라제네카와 면역항암제 관련 기술수출 계약을 맺은 데 이어 최근에는 국내 바이오 기업 에이비엘바이오가 자체 개발한 이중항체 항암 신약 기술을 사들이며 면역항암제 분야에서 항체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게 됐다. 동아에스티는 2016년 미국 제약사 애브비와 면역항암제 신약 후보물질인 MerTK저해제에 대해 총 5억2500만 달러(약 6400억 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지난달 1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선 다국적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와 면역항암제 공동연구 계약을 맺었다. 계약에 따라 동아에스티는 아스트라제네카가 연구하고 있는 3가지 면역항암제 타깃에 대한 선도·후보 물질을 도출하는 물질탐색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어 지난달 말에는 에이비엘바이오와 이중항체 기반의 신규 면역항암제 공동개발 및 라이선스 인(License-in) 계약도 체결했다. 이번 계약에 따라 동아에스티는 에이비엘바이오가 연구 중인 면역항암 기전의 이중항체 신약 2개 파이프라인에 대한 글로벌 독점권을 갖고 세포주 개발 및 공정 개발, 임상 개발과 상업화를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양사가 공동개발하는 이중항체는 항원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항체의 작용원리를 이용해 면역세포와 암세포에 동시에 작용, 암세포에 대한 인체의 면역반응과 항암효과를 극대화시켜 암을 치료하는 방식이다.
미국 바이오벤처기업 제네렉스로부터 면역항암제 ‘펙사벡’을 확보한 신라젠도 2020년 출시를 목표로 막바지 임상시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라젠의 항암바이러스 펙사벡은 다양한 고형암을 대상으로 6건의 병용투여 임상이 진행되고 있거나 준비 중이다.
바이오벤처 제넥신은 항암백신 ‘GX-188E’와 면역관문억제제 ‘키트루다’의 병용투여 임상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6000억 원 규모의 기술수출에 성공한 새로운 기전의 면역항암제 ‘하이루킨’도 다양한 병용투여 임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제넥신은 또 IL-7(T세포 증식 및 활성화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적용한 파이프라인이 미국 관계회사(네오이뮨테크)와의 공조로 신규 개발 중에 있다. 이 물질은 단독 투약뿐만 아니라 면역관문 저해제들과의 병용 투약에서 시너지 효과가 기대됨에 따라 차세대 파이프라인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면역관문억제제를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사와의 기술협약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