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안태근, 박상기, 문유석

입력 2018-02-07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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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사람들은 요즘 모이면 검찰 내 성폭력을 고발한 서지현 검사 이야기를 많이 한다. 며칠 전 어느 모임의 10명이 앉은 자리(전원 60대 남자다)에서도 어김없이 이 이야기가 나왔다. 놀라운 것은 8년 전의 일을 고발하고 나선 서 검사의 용기를 높이 평가하는 게 아니라 뒤늦게 피해 사실을 공개한 의도와 배경을 의심하거나 납득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서 검사의 외모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사람도 물론 있었지만, 그런 사람도 암묵적(暗默的) 동의를 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느냐?”며 화제를 다른 걸로 돌렸지만, 이런 것이 바로 서 검사가 예상하며 걱정해온 2차 피해이며 이런 또래, 이런 신분의 남성들 사이에는 이런 분위기가 여전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성폭행이든 성추행이든 성희롱이든 성차별이든 일체의 성폭력은 남녀 대결의 문제가 아니다. 세대 간의 인식 차이 문제일 수도 없다. 그것은 사회질서를 해치는 일이며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도리를 저버림으로써 한 사람의 인격과 삶을 파괴하는 범죄행위다. 남녀 문제가 아니라 인간 문제인 것이다.

이 사건을 보면서 안태근, 박상기, 문유석 세 남자를 생각한다. 잘 알다시피 안태근은 서 검사에게 성폭력을 가한 사람으로 고발된 전 검찰 간부, 박상기는 서 검사의 이메일 진정을 받고도 그 사실을 부인했다가 뒤늦게 인정을 했지만 이 문제를 소홀하게 다뤘던 법무부 장관이다. 문유석은 서 검사를 비롯한 여성들의 ‘미투(#MeToo)’운동을 응원하며 “나부터 나서서 성폭력을 막자”는 ‘미 퍼스트‘(#Me First)’ 운동을 제안한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다.

안태근, 박상기, 문유석은 특정인의 고유명사이지만 이 경우 일반명사이다. 남자들은 안태근일 수도 있고 박상기일 수도 있다. 안태근이 서 검사를 성추행할 당시 제지하지 않았던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나 그 주위에서 구경만 했던 검찰 간부들은 실은 다 안태근이다. 이런 사건을 해결하거나 해소할 수 있는 직장의 우두머리나 어른으로서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들은 다 박상기이다.

어떤 여검사는 “너랑 자고 싶다”고 한 선배 검사의 성희롱을 상관에게 보고하며 고충을 토로했더니 그도 “나도 너랑 자고 싶다”고 말했다는데, 이런 상관이 바로 안태근이며 박상기이다. 특히 박상기는 안경환 법무부 장관 내정자가 낙마한 뒤 어렵게 장관으로 임명돼 검찰개혁의 중책을 떠맡고도 여성 검사의 아픔과 괴로움을 인식하고 공감하고 이해하는 능력과 성실성이 모자랐다.

실은 이런 점이 바로 검찰의 문제이다. 형법에 기대어 형법을 배경 삼아 살면서 남들을 잠재적 피의자로 보며 지배하려 하기 일쑤인 검사들에게는 성폭력이 낯설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그런 행동이 일상화 체질화 습관화한 것 같다. 남자들은 대부분 ‘안태근+박상기’로 살아가고 있다. “남자는 다 애 아니면 개다”라는 말이 있지만 애와 개의 나쁜 점만 갖춘 남자들은 의외로 많다.

그런 점에서 문유석의 발언을 주목하게 된다. 그의 제안은 많은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다. 남자들은 ‘안태근+박상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더 많은 문유석,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다짐을 실천하는 문유석이 나와야 한다. 캐나다의 교육 잡지 ‘오늘의 부모들(Today’s Parents)’ 편집장을 지낸 전문 편집인 프랜 펀리는 고교 교사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폭력은 침묵 속에 전염된다’는 책을 냈다. 학교 폭력을 다룬 책이지만, 침묵 속에 전염되는 건 직장과 사회에서의 성폭력도 마찬가지이다.

검찰에서 촉발된 미투운동은 지금 사회 각계로 번지고 있다. 비뚤어진 우상과 잘못된 권력은 마땅히 파괴돼야 한다. 직업이나 성(性), 연령과 지위로 얻게 된 권력을 성폭력이든 무엇이든 폭력을 행사하는 데 쓰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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