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뒷간 귀신과 똥떡

입력 2018-02-0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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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무렵에 늘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40여 년 전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다. 오래된 일인데도 그때의 모든 상황이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뒷간 귀신’ 이야기이다.

세 살 터울 지는 동생이 여섯 살 때 뒷간에 빠졌다. (아아, 뒷간이 뭔지 모르는 이들이 있으려나? 뒷간은 변소를 완곡하게 표현한 말로, 밑이 뻥 뚫린 재래식 화장실이다.) 동생은 유난히 뒷간을 무서워했다. 지금처럼 집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마당 귀퉁이 으슥한 곳에 있었으니, 어둑어둑해지면 볼일을 참는 건 다반사였다. 도저히 못 참을 때엔 언니, 오빠들이 돌아가며 뒷간 앞을 지켰다. 그날 낮엔 동생 혼자 뒷간에 갔는데, 무슨 상상을 했는지 부랴부랴 나오다 한쪽 발이 ‘똥’ 구덩이에 빠졌다.

불가사의한 일은 그날 저녁에 터졌다. 잘 뛰어 놀던 동생이 갑자기 서지도, 걷지도 못했다. 동네(강원 태백) 병원은 물론 강릉시내 큰 병원까지 갔지만 다리와 발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기독교 ‘집사님(지금은 권사님)’인 엄마가 놀라운 말을 했다. “아이가 뒷간에 빠진 것은 뒷간 귀신을 화나게 해 귀신이 심통을 부린 것이다. 굿을 해서 귀신의 화를 달래고 귀신이 좋아하는 ‘똥떡’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 먹어야 낫는다”라는 옆집 ○○ 엄마의 말대로 하겠다고.

며칠 후 무당이 시키는 대로 엄마 등에 업혀 똥떡을 나이 수만큼 먹은 동생은 정말 기가 막히게도 말짱하게 걸어서 내게로 왔다. 똥떡은 쌀가루를 한 입 크기로 동그랗게 빚어 쪄낸 것으로, 동생처럼 똥통에 빠진 이들의 건강을 되찾아주고,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이웃과 나눠 먹으며 정을 쌓은 ‘복(福)떡’이었다.

우리 세시풍속에는 뒷간 귀신과 같은 악귀를 쫓는 행위가 많다. 설날 밤에 야광귀(夜光鬼)라는 귀신이 신발을 신고 가면 한 해 동안 불길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어 신발을 방 안에 감추거나 뒤집어 놓는 것이 대표적이다.정초(正初)엔 대문에 개 그림을 그려 붙여 귀신이 못 들어오게 했다. 특히 결혼, 이사 등 중요한 집안 행사는 악귀가 움직이지 않는 ‘손 없는 날’로 정했다. 집을 수리할 때도, 된장·고추장·간장을 담글 때도, 가족이 멀리 길을 떠날 때도 손 없는 날을 살폈다.

‘손 없는 날’의 손은 손님의 줄임말로, 사람을 해코지하는 나쁜 귀신이다. 이 악귀들은 열흘 단위로 동서남북으로 옮겨 다니며 사람이 하는 일에 훼방을 놓는다. 음력을 기준으로 끝수 1·2일에는 동쪽, 3·4일에는 남쪽, 5·6일에는 서쪽, 7·8일에는 북쪽에 있다가 9·0일에 하늘로 올라간다. 그래서 악귀가 사라진, 끝수가 9와 0인 매월 9, 10, 19, 20, 29, 30일이 손 없는 날이다. 손 없는 날은 악귀에게 해를 당하지 않는 날이라 해서 ‘길일(吉日)’이라고도 한다. 길일은 매달 음력 초하룻날을 일컫기도 한다.

옛사람들은 악귀를 떨쳐내는 것뿐만 아니라 복(福)을 중요시해 못하게 한 행동이 많았다. 다리 떨면 복 나간다, 밤에 휘파람 불면 뱀 나온다, 한숨 쉬면 복 달아난다, 밤에 손톱 깎으면 귀신이 쫓아다닌다, 문지방(門地枋)을 밟으면 복이 나간다….

최근 몇몇 전문의들은 “다리를 떨면 하체의 혈액순환이 원활해지고, 휘파람을 불면 안면근육이 단련되며, 한숨은 폐를 건강하게 한다”며 금기시하던 행동을 오히려 권장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자녀에게 올바른 생활습관을 들이려던 옛사람들의 생각을 놓친 듯하다. 수양(修養)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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