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흔적’ 집착...소방차 진입 못하는 골목길

입력 2018-02-09 10:59 수정 2018-02-0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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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도시재생사업에서 ‘흔적 남기기’에 지나치게 몰두해 주민안전 우려 등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부 지역의 경우 소방차 진입로가 확보되지 않은 골목길까지 기존 모습 그대로 보존하는 재생사업을 추진하는 등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다.

9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서울형 골목길 재생사업’을 올해 안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 사업은 용산구 후암동, 성북구 성북동 등 폭 1.5m남짓의 골목길의 본래 모습을 보존한 채 길가에 커뮤니티 공간, 마을 텃밭, 골목전망대를 조성해 지역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전문가들은 사업이 원안대로 추진되면 화재 등 도시재생 사업에서 고질적으로 제기돼 왔던 주거민 안전 문제를 담보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범사업지로 선정된 후암동 두텁바위로40길은 폭 1~1.5m, 성북동 선잠로2길은 폭 0.6~2m의 골목이다.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국내 표준규격의 소방차의 경우 폭 2.1m이기 때문에, 이 골목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할 경우 소방차 진입은 불가능하다. 해당 사업에 관련된 부서에 서울시 한 관계자는 “서울형 골목길 재생사업에서 소방진입로 확보 등을 위한 골목길 확장 등에 내용은 담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같은 서울시 방침은 최근 제천 스포츠센터와 밀양 세종병원 화재 등으로 인해 안전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는 현 상황에서 부적절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서울시가 ‘서울형 골목길 재생사업’ 추진 시범지역으로 발표한 용산구 후암동 두텁바위로 40길의 모습. 원안대로 기존 형태를 보존할 경우 화재 시 소방차의 진입이 불가능하다.
▲서울시가 ‘서울형 골목길 재생사업’ 추진 시범지역으로 발표한 용산구 후암동 두텁바위로 40길의 모습. 원안대로 기존 형태를 보존할 경우 화재 시 소방차의 진입이 불가능하다.

서울시가 도시재생적 관점의 접근으로 흔적에 집착한 사례는 시설물 조성 뿐 아니라 민간 아파트 재개발·재건축 등을 가리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져 인근 지역민들의 불만을 사온 바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에 마포 석유비축기지의 석유 저장탱크와 내외장재 등을 그대로 보존한 문화시설인 ‘문화비축기지’를 개관했다. 이달 2일에는 서울숲 인근의 성수동 삼표레미콘 이전부지 활용 계획 시민 공모전을 열어 시멘트 사일로와 집진기 설비 등을 보존해 공기정화시설로 개조하는 안을 낸 응모작을 대상작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들 시설물에 대해서는 지역민들의 끊임없는 볼멘 소리가 이어진다. 마포구와 성동구 거주민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서는 “문화비축기지는 완공된 것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다. 너무 원형 그대로라 예산이 어디에 투입된건지도 알 수 없다”거나 “역사적 보존가치가 있어야 재생에 의미가 있는데 혐오시설로 인식된 성수동 레미콘 공장을 그대로 되살리겠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등의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서울시의 흔적 보존 의지는 사유재산인 아파트 재건축 사업에까지 사업 향방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1월엔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조합에 기존 아파트 523동을, 이달 초엔 개포주공4단지 조합에 기존 아파트 428동을 존치하라고 결정했다. 이들 단지 조합들은 서울시의 기존 동 보존 방침으로 인한 부지 손실이 사업 수익성에 끼치는 악영향 등으로 인해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 역시 현재와 같은 형태의 흔적 남기기 방침은 역사 보존의 의미로서도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대다수 선진국의 경우 역사유물 등 남길만한 가치가 있는 유산에 대한 존치 원칙은 철저하다”며 “다만 존치 결정에 앞서 이것이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재인지 결정하는 논의 절차가 엄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되는데 국내의 경우 그런 시스템이 미비해 유산 보존에 대한 기준이 불분명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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