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 증가가 안보에 위협이 되고 있다며 수입 제한 방안의 구체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표적은 중국이지만 한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가 대상이 된 만큼 미국과 중국 주요 2개국(G2)간 무역전쟁에 주변국까지 말려드는 모양새다. 미국이 안보를 이유로 이례적인 수입 제한을 단행할 경우 다른 나라에도 대항 조치의 빌미를 주는 등 질서 없는 ‘무역전쟁’으로 발전해 세계 무역은 대혼돈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알루미늄과 철강 수입 제한 방안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권고했다고 발표했다. 모든 국가에 철강 수입에 최소 24%의 관세를 적용하는 조치 등 다양한 방안이 담겼다.
권고안에 따르면 철강에 대해서는 (1)모든 국가에 최소 24%의 추가 관세를 부과, (2)브라질 중국 한국 등 특정 12개국에 최소 53%의 관세를 부과하고 다른 나라에는 2017년 실적과 같은 수입 쿼터를 마련, (3)모든 국가에 2017년 실적의 63%에 상당하는 수입 쿼터를 마련하는 등의 3가지 안이다. 알루미늄에 대해서는 (1)모든 국가에서 수입에 최소 7.7%의 관세를 부과, (2)중국 러시아 베트남 등 5개국에 23.6%의 관세를 부과 (3)모든 국가에 지난해의 86.7%로 대미 수출을 제한하는 등 철강과 마찬가지로 3가지 안을 권고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스콧 케네디 연구원은 “예를 들어, 철강의 경우, (2)안에 대해서는 불공정한 무역 상대국에 제재를 부과한다는 관계를 알기 쉬우며, 실제로 수입량을 제한하는 효과는 다른 방안에 비해 약하지만, 유권자가 알기 쉬워 개별 국가와의 통상 협상에서 협상 재료로 사용하려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무역확장법 232조. 이번에 수입 제한 근거가 된 이 미국 국내법은 안보를 이유로 무역을 금지하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철강과 알루미늄의 수입이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고 있지 않은지 여부를 조사하도록 상무부에 지시했다. 철강이나 알루미늄이 중국 등의 부당한 염가 판매로 자국 내 공급 능력이 떨어지면 무기 제조 및 국방 기술 유지가 어려워진다는 이치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일방적인 수입 제한을 금지하지만 보안이 이유인 경우에는 ‘예외’로 다루고 있다. 1982년 리비아산 원유를 안보 상의 위협으로 인정해 수입을 금지한 바 있으며, 그 4년 후 미국은 리비아를 폭격했다. 다만 이번에는 안보 상의 절박한 이유가 없다. 안보를 빌미로 일방적으로 수입 제한을 발동하면 각국의 반발은 불가피하며, 세계 무역은 큰 혼란에 빠질 위험이 크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16일 기자회견에서 다른 나라들도 같은 방법으로 대응할 가능성을 인정, “이것이 국가 안보의 완전히 정당한 해석이라고 우리는 믿는다”며 “대항조치가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는, 있어도 놀랍지 않다. 몇몇 국가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들 국가가 WTO에 제소하거나 다른 수단으로 대항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권이 이처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입 제한 카드를 꺼낸 것은 세계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산 철강의 과잉 생산을 문제시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중국에 부과해온 반덤핑 관세 등 WTO 규정에서 명확하게 인정된 조치는 “매우 제한된 국가의 한정된 제품으로 밖에 해결할 수 없다”고 로스 장관은 말했다. 그러면서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을 우회해 싼 제품이 유입되고 있다며, 보다 보호주의적인 수입 제한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여야 의원들과의 회의에서 “(수입 제한으로 철강 등의) 가격은 다소 오를 수도 있지만 고용을 창출한다. 고용이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 한 바 있다.
또 미국 정부가 보호주의적 조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은 올 가을 대통령의 성적표 격인 중간선거를 앞둔영향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철강 산업이 번성했던 중서부를 중심으로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미국 산업을 보호하고 있다는 자세를 강하게 어필, 지지 기반을 다질 목적이 두드러진다. 또한 중국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저지에 대한 행동을 촉구하는 미 행정부의 의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미국이 사실상 무역전쟁의 포문을 열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중국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중국 상무부는 17일 미국의 철강과 알루미늄의 수입 제한 방안에 대해 담화를 발표했다. 왕허쥔 상무부 무역구제조사국 국장은 “미국의 조사는 근거가 없다. 중국의 이익에 영향을 미친다면 필요한 조치를 취해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보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안보상의 이유를 명분으로 한 것은 남용되기 쉽다. 각국이 모방하면 무역 질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에 대해선 4월 11일까지, 알루미늄에 대해선 4월 19일까지 결론을 내려야 한다.
BMO캐피털마켓의 데이비드 갈리아노 애널리스트는 17일 ‘철강·알루미늄 무역전쟁 시작’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권고된 방안은 모두 예상보다 심각해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통상 전문가 게리 허프바우어는 “이것은 국가 안보의 상당히 확대된 해석이며, 하나는 보복, 두 번째는 다른 국가들이 서로 경쟁하는 일종의 패스포트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보복 관세 이외에 중국이 미국을 WTO에 제소할 수도 있고, 분쟁 처리 과정에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