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캐나다 호주 등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가하는 11개국이 ‘TPP11’ 서명을 앞두고 긴장하고 있다. 역내 자유무역을 촉진하는 협정에 환호와 기쁨이 앞서는 대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어떤 훼방을 놓을지 우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6일(현지시간)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맬컴 턴불 호주 총리,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이날 전화 회담을 통해 트럼프의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품 관세 발동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아베 총리는 트뤼도 총리와의 회담에서 미국을 제외한 11개국의 TPP11 조기 발효를 위해 노력하자는데 의견을 같이하면서 캐나다가 올해 의장국을 맡은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서의 협력도 합의했다.
트럼프가 지난 1일 안보 위협을 이유로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의 관세를 각각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TPP11이 출범하기도 전에 회원국들이 최대 악재를 맞은 셈이다.
일본 정부는 이날 각의(국무회의)에서 예정대로 오는 8일 칠레에서 새 TPP11에 서명하기로 결정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경제재정·재생상이 일본 대표로 참석한다.
TPP11은 지난 1월 협정 주요 내용에 대한 협상이 타결됐다. 미국을 포함해 12개국이 2016년 서명한 TPP 협정문 원본 내용 거의 그대로이며, 미국의 의향이 강하게 적용됐던 바이오 의약품 데이터 보호기간 등 22개 항목은 효력이 동결됐다.
일본 정부는 올해 안에 TPP11 인준안과 관련 법안을 의회에 제출, 6월까지 가결시킬 의향이다. TPP11이 발효하려면 11개국 중 6개국이 국내 인준 절차를 완료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내년 상반기 발효를 목표로 하고 있다.
트럼프가 지난해 1월 취임 직후 탈퇴를 선언하면서 TPP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일본이 주도적으로 나선 끝에 가까스로 TPP11로 나아갈 수 있게 됐다. 새로운 협정의 정식 명칭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다.
여기에 트럼프 변수가 다시 등장했다. 그 발단은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일명 다보스포럼)이었다. 트럼프가 이 자리에서 TPP 복귀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은 상호 호혜적인 협정을 모든 국가와 맺는 것에 뜻이 있다”며 “여기에는 TPP 회원국도 포함된다. 양국간 또는 그룹 단위로 협상해도 좋다”며 다자 협상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의향을 보였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도 지난달 27일 미국 상공회의소 연설에서 “다자간 협상으로 하거나 TPP에 복귀하는 것 모두 테이블 위에 있다”며 “매우 수준 높은 대화를 시작했다”고 복귀 가능성을 내비쳤다.
일본 등 11개 TPP 회원국은 미국의 복귀 가능성 시사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이 뒤늦게 복귀할 움직임을 보이면 각국이 동요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미국이 TPP에 합류하면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느라 골치 아플 일도 없다.
다만 캐나다와 뉴질랜드 등 일부 회원국은 미국의 합류가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재협상으로 미국과 대치하는 캐나다는 TPP11이 원래 TPP보다 자국에 미치는 경제효과가 더 크다고 추산하고 있다. 뉴질랜드도 TPP11을 더 선호하고 있다.
실무적으로도 미국 복귀를 다루는 것은 까다롭다. TPP11 협정문에서 11개국 이외 다른 국가와 지역의 가입에 대비한 조문은 ‘서로 합의한 조건으로 가입할 수 있다’는 추상적인 내용이 전부여서 미국이 복귀할 때 구체적 대응책은 백지상태나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복귀 논의가 당장 표면화되지는 않으리라고 보고 있다. 트럼프의 갈팡질팡하는 태도와는 별개로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나프타 재협상에 초점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TPP 복귀를 협의할 여력이 없다.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도 있어 보호무역주의를 내건 트럼프가 자제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중간선거 이후 TPP 복귀에 본격적으로 나서면 11개 회원국이 다시 제각각 국내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해 사실상 내년 발효는 불가능해진다.
미국이 진심으로 복귀할 의사가 있는지, 아니면 양자 무역협정 협상을 유리하게 처리하려는 분열 작전인지 그 의도를 파악할 수 없어 11개 회원국은 서명을 마치고도 긴장을 늦출 수 없을 것이라고 신문은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