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인텔은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 시도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또 두 회사가 합병하면 인텔에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라는 불안 속에 아예 브로드컴을 사들이는 것도 옵션 중 하나로 포함하고 있다. 인텔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이런 방안을 검토해왔으며 현재 법률자문 등과 이를 논의하고 있다고 소식통은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브로드컴의 기업 규모, 복잡하게 얽혀있는 관계 등을 감안하면 인텔이 브로드컴을 인수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브로드컴의 시가총액은 약 1040억 달러(약 111조4084억 원)에 달한다. 인텔 시총도 약 244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인텔이 브로드컴 대신 규모가 작은 다른 회사 인수·합병(M&A)에 나설 수도 있다. 브로드컴이 지난해 말 퀄컴에 대한 적대적 인수를 선언하고 나서 인텔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하면서 반도체 업계 재편을 둘러싼 드라마가 더욱 극적으로 변하고 있다.
브로드컴은 지난해 11월 처음 퀄컴 인수를 제안했으며 여러 차례 가격 조정 끝에 현재 1170억 달러에 퀄컴을 인수한다고 표명한 상태다. 브로드컴은 지난 6일 퀄컴 주주총회에서 자사 인사들을 이사회로 올려 인수에 종지부를 찍을 참이었다. 그러나 미국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가 이례적으로 개입해 퀄컴의 주주총회를 30일 연기하도록 지시하면서 다시 교착 상태에 빠졌다.
개인용 컴퓨터와 데이터센터용 서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인텔은 스마트폰을 필두로 한 모바일 혁명을 놓쳤으며 이후 퀄컴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애플이 최근 퀄컴과 라이선스 분쟁을 벌이면서 일부 기기를 인텔 반도체로 전환하고 있다. 만일 인텔이 퀄컴을 손에 놓으면 애플과의 관계가 더 원만해지고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새 채널을 확보하게 된다.
아울러 퀄컴은 올 초 네덜란드 반도체 업체 NXP를 44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인텔이 브로드컴 인수에 성공하면 무려 3개 기업을 손에 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텔은 최근 PC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서 벗어나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이스라엘 자율주행차량 시스템 개발업체 모빌아이를 153억 달러에 인수했다. 2015년에는 세계 2위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 업체 알테라를 167억 달러에 사들였다. 인텔은 데이터센터와 사물인터넷(IoT) 등의 분야에 강점을 가진 알테라와의 시너지를 노렸다.
퀄컴은 특히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인 5세대(5G) 부문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인텔이 브로드컴 인수를 고려한 것도 퀄컴이 다른 기업에 넘어가 5G에서 끌려 다닐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가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에 개입한 것도 퀄컴의 기술이 최종적으로 중국에 넘어가거나 5G 경쟁력이 약화하는 것을 우려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브로드컴은 미국 측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해 퀄컴을 사들이면 중요한 국가안보 자산을 외국에 팔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또 브로드컴은 본사를 아예 미국으로 이전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