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G2로 일컬어지는 미국과 중국 간 통상 갈등이 우리나라에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을 상대로 꾸준한 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은 중국과 함께 무역제재 조치의 대상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른 나라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유리하게 바꾸기 위한 수단으로 철강·알루미늄 등에 ‘관세 폭탄’을 활용할 것임을 시사한 이달 6일 서울 중구 법무법인 광장에서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서울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을 만나 대응책을 들어봤다.
-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산을 포함한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한미 동맹이 약화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압력은 어디까지나 미국 내부에 기인한다고 봐야 한다. 2016년 말 대통령 선거 때 약속한 것들을 이행하려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소위 ‘녹슨지대(Rust Belt)’에 위치한 특정 산업을 선정했다. 이는 냉장고·자동차·세탁기·철강 부품 등 한국이 잘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는 것과 일치하기 때문에 한국이 집중 대상이 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한국이 적당한 타깃이 된 셈이다.”
- 미국의 무역 분야 공세를 막을 방법은 없나
“7명으로 이뤄진 WTO 상소기구위원이 9월이 되면 임기 만료로 3명만이 남는데, 위원을 새로 선임하는 절차를 미국이 막고 있다. 수많은 분쟁을 3명의 위원이 처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각국이 모여 무역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하루빨리 위기의식을 갖고, ‘다자 체제’로의 선언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무역전쟁의 전조가 감지되는데, 이런 상황이 과거 ‘대공황’과 같은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나
“지금보다 강도가 에스컬레이션이 되면 가능할 수 있다. 미국의 관세부과 조치에 유럽연합(EU)이 반발하며 미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다시 미국이 자동차 등 핵심 상품에 관세를 부과한다면 수요가 떨어질 것이고, 독일과 미국 경제가 안 좋아진다. 그것이 1920년대 대공황을 불러왔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미국은 대공황이 오니 이것을 막아 보겠다고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시행해 관세를 더 올렸는데, 이후 물가가 전부 상승했다. 그 이후에 미국이 관세인하 협상을 하기 시작했고, 자유무역의 근간이 된 가트(GATT) 체제로 이어졌다. 다자 체제를 만든 장본인이 미국이지만, 지금은 완전히 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어 혼란 상태다.”
- 미국의 통상 압박에 단호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과 실리 외교를 펼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데 어떤 전략을 취하는 것이 우리 기업의 피해를 줄일 수 있나
“혼란한 상황일수록 기본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국가 전체 차원에서는 자유무역주의에 어긋나는 정책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표명하고, 협상을 담당하는 통상교섭본부는 진정성 있는 자료를 가지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전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미 무역흑자가 지난해 179억 달러로 줄어든 것은 우리의 노력이라는 점을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무역을 많이 하면서 내수 시장이 작은 나라로 미국 시장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섣불리 보복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다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미국의 무역제재) 조치들이 자의적이고 부당하다는 측면에서 정부는 WTO에, 기업들은 미국 무역법원(CIT)에 제소하는 것이다. 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다른 국가들과 공동 입장을 취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겠다.”
- WTO를 통한 대응 방침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WTO 제소가 실효가 없다고 하지만 제소를 일단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본다. 다른 여러 나라들이 제소하는 경우 미국에 압력으로 작용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미국으로 수입하는 물품에 대해 보복을 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지만,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무역전쟁을 하자는 것이 돼 문제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보복은 최종 수단으로 남겨 놓아야 할 것이다.”
- 미국과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를 줄여나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의견은
“새로운 비즈니스를 통해 자연스럽게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미국은 세계 GDP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온갖 하이테크 기술 경쟁이 펼쳐지는 시장이다. 미국과의 무역실적이 떨어지는 것은 우리 경제 미래가 없다는 방증이다. 미국과 중국으로의 수출을 줄여나갈 것이 아니라 더욱 다변화해야 한다. 우리가 무역을 상대적으로 많이 하고 있지 않은 인도, 남미, 러시아, 중동, 아프리카 지역으로 시장을 다변화하는 것이 중요하고 상품도 중소기업 품목으로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미국 시장은 우리나라의 미래 발전을 위해 앞으로도 가장 중요한 최대 선진국 시장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기업 입장에서 통상 압력에 대한 타개책은
“기업들도 대미 수출을 할 때 지나치게 많은 물량을 한꺼번에 밀어내는 것은 전략적으로 지양해야 할 것이다. 기업 차원에서 CEO가 전략을 세워야 한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일이 터지면 미국 변호사를 고용해 돈으로 때우는 것이 관행이었다. CEO가 분기별로 주요 시장 수출증가율을 모니터링하는 등 관리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통상 전문가를 통해 자문을 받아 평상시 통상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
- 미국 빠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내년 발효될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은
“우리가 TPP에 들어가지 않음으로 해서 우리 부품을 사용하지 않는 무역 전환 효과가 발생할 수 있지만 큰 손해는 아니다. 지금부터 안달할 필요는 없다. 다만, TPP에 가입할 경우 우리 기업들이 시장을 엮어서 물건을 만드는 데 훨씬 편해질 수 있다. 일본, 멕시코와 FTA를 맺는 의미가 있으므로 정부 차원에서 TPP에 참여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밝힐 필요가 있다.”
- 통상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통상 전문가가 손에 꼽히는 실정인데, 이에 대한 해결책은
“이전 정부가 들어서던 2013년 외교통상부의 통상교섭본부를 산업부로 이관했다. 그러나 조직을 그대로 둔 것이 아니라 산업부 일반 조직에다 붙여놓았다. 2년 후 외교통상부에 파견으로 간 전문가들이 외교부로 복귀하면서 조직의 전문성이 떨어지게 됐다. 이번 정부에서 늦게나마 산업부 안에 통상교섭본부를 다시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본부장을 차관급으로 임명했다. 외교통상부 시절에는 장관급이었다. 조직의 힘이 없어지다 보니 좋은 인재들이 많이 모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통상교섭본부장은 반드시 장관급으로 상향 조정하고, 가급적 산업부 내에서 독립적으로 본부장의 지휘 아래 조직이 움직이게 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좋은 인력이 모이고 전문성도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태호 원장은
박태호(66)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 초대 원장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경제학자다. 국제 통상 무대에서 전문가로 활약해 학계는 물론 관계에서도 신뢰가 두텁다. 서울대를 거쳐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조지타운대 경제학과 조교수를 지냈다. 이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무역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친 국제통상 전문가다. 제1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의 공동의장을 맡기도 했다. 1997년부터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다 정년퇴임해 명예교수가 됐다.
법무법인 광장은 국제통상 동향 분석과 기업의 해외 진출과 투자를 지원하기 위한 연구 교육기관으로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을 지난해 9월 설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