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터닝포인트] 대통령까지 속였던 GM

입력 2018-03-1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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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1부 차장

5년 전이었던 2013년 2월. 한국지엠(GM) 부평 본사에서 기자간담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GM 해외사업부문 팀 리 사장은 “한국지엠에 제품 개발과 인프라 구축, 디자인 역량 강화를 위해 향후 5년 동안 약 8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를 집행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한국지엠이 출범 이후 글로벌 GM의 성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고, 미래에도 그 역할이 지속될 것”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꽤 고무적이었습니다. 당시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내수시장 점유율이 80%를 넘어서던 시절이었는데요. 걸출한 경쟁상대가 등장하면 그 시장은 자연스레 경쟁을 통한 ‘질적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댄 애커슨 GM 회장은 같은 발언을 했습니다.

그렇게 5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GM은 8조 원의 투자는커녕 높은 이전가격을 앞세워 순이익을 빼냈고, 과도한 이자 장사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 시장 철수”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GM은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면 신차 생산을 배정하고 한국에 남겠다”고 합니다. 그래 봤자 버틸 수 있는 기간은 5년, 라이프사이클(모델 교체 주기)을 감안해도 7년 정도라는 주장이 많습니다. 지금 GM이 제시하는 조건들 모두 ‘단기 전략’에 집중돼 있다는 것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차 값이 쌀수록 ‘현지생산 현지판매’가 원칙인데요. 현재 한국지엠이 생산 또는 판매하고 있는 차의 90% 이상이 대중차입니다. 비싼 노동력을 투입해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지요.

때문에 GM은 한국 정부에서 지원받으면 딱 그만큼만 공장 운영을 더하고 빠져나가게 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이전가격 문제를 해결하고, 차입금 담보설정과 이자율을 조정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많습니다. GM에 “왜 한국에서 철수하려고 하느냐”를 묻기보다 GM이 한국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를 찾아보면 의외로 답이 쉽게 나옵니다.

그들은 정치권과 산업은행 회장을 만나며 “착한 한국 시민이 되려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고작 보름 앞둔 5월 말에 군산공장을 폐쇄하겠다는 것도 치밀한 전략입니다. 전 세계 여기저기서 공장 폐쇄와 사업 철수를 단행했던 만큼 이 부분에서 노하우가 많습니다. 잘못하면 우리가 또 휘말릴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 정부는 한국지엠에 제한적이나마 돈을 지원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의 돈으로 시간 벌기에 나섰다면 그 기간에 GM의 체질을 바꿔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미국 냉혈자본의 잔류를 희망하기보다 애초 우리 것이었던 것을 되찾아야 한다는 고민도 필요해 보입니다. 노조가 힘을 보태고, 정부가 명민하게 움직이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5년 전, GM은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에게 “8조 원 투자”를 약속했습니다. “한국에서 다음 세대 성장동력인 전기차를 생산할 예정”이라며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도 단행하겠다”며 선물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 시장 철수와 우리 국민의 일자리를 볼모로 “철수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정부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지원만 받고 철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에 대해 “왜 우리 계획을 믿지 못하느냐”고 합니다. 그런데, 못 믿을 짓은 당신들이 먼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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