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포토라인에 선 날부터 22일 밤 구속되기까지 이명박(77) 전 대통령은 생애 가장 참기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 지난 14일 110억 원대 뇌물 수수 혐의 등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서초동 검찰 청사에 출석한 이 전 대통령은 이같이 말했다. 전두환·노태우·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검찰 조사를 받은 다섯 번째 전직 대통령으로 기록된 순간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청사에서 다음 날 아침을 맞았다. 14일 오전 9시50분부터 15일 오전 6시25분까지 21시간30여분에 걸쳐 이어진 밤샘 조사였다.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온 이 전 대통령은 담담하지만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취재진에게 남긴 말은 "다들 수고했다"는 한마디뿐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서 "모른다", "실무선상에서 한 일"이라며 대부분 혐의를 부인했다. 서초동 영포빌딩에서 발견된 삼성 다스 소송비용 대납 문건에 대해서는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모르쇠' 전략은 이 전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다. 검찰은 소환 5일 만에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뇌물수수를 비롯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조세포탈·국고손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등 적용된 죄명만 5개였다. 혐의는 10여 개에 이르렀다. 검찰은 혐의를 부인한 이 전 대통령이 관련자들과 '증거 인멸'에 나설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검찰의 구속영장이 접수되자 22일 오전 10시30분 이 전 대통령의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일정을 잡았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 측은 지난 20일 "검찰에서 본인의 입장을 충분히 밝힌 만큼 법원의 심사에 출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구속 수순을 예상한 이 전 대통령이 재판에서 다투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결국 법원은 고심 끝에 검찰과 변호인 측이 각각 낸 서면으로 심리를 진행했다. 이 전 대통령은 구속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대기했다.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부장판사는 밤 11시6분께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수사를 맡았던 서울중앙지검 신봉수(48·사법연수원 29기) 첨단범죄수사1부 부장검사와 송경호(48·29기) 특수2부 부장검사, 수사관들이 이 전 대통령의 자택에서 구속영장을 집행한다. 이 전 대통령은 이제 서울동부구치소 독거실(독방)에서 홀로 지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