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금융 부문에서 공산당 일당 지배체제를 더욱 견고히 하고 있다. 인민은행 총재와 당서기를 분리해 정부 각 부문에 대한 당의 영향력을 확고히 할 방침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5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궈슈칭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 주석이 인민은행 공산당 당서기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이강 인민은행 총재가 임명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궈 주석이 그의 위에 서게 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인민은행 당서기는 보통 총재가 겸임하는 게 일반적이다. 저우샤오촨 전 인민은행 총재도 지난 16년 간 당서기를 겸임했다.
이는 궈 주석에게 금융 감독의 광범위한 책임을 맡기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궈 주석은 외환관리국 국장, 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회) 주석, 은행업감독관리위원회(은감회) 주석 등을 지냈다. 그는 지난 19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은행과 보험 부문을 통합 관리·감독하는 신설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은보감회) 초대 수장으로 선임됐다. 여기에 인민은행에 대한 권한까지 갖게 된 것이다.
궈 주석과 이 총재는 인민은행을 회장과 최고경영자(CEO) 직분이 나뉜 미국 기업과 같은 형태로 운영할 것이라고 NYT는 내다봤다. 궈슈칭은 원칙적으로 인민은행의 의장이 되며 이 총재는 CEO의 역할을 맡게 된다. 인민은행 총재가 중앙은행 운영에 대한 책임을 갖지만 당비서가 전략 방향에 대해 최종적인 의견을 제시한다. 얀 스베나르 컬럼비아대 국제경제거버넌스센터 소장은 “중국의 금융 규제 업무가 급속도로 바뀌면서 국가 지도자들이 금융 시스템의 약점에 대처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NYT는 이 총재가 경제 전문가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궈 주석이 더 나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인민은행 총재는 당 중앙위원이 맡아왔으나 이 총재는 205명의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에 들지 못했다. 궈 주석은 중앙위원에 속해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궈 주석이 인민은행에서 이 총재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반면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당서기로 궈 주석을 임명하는 것은 이 총재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궈 주석의 임명은 정부 각 부문에 대한 당의 영향력을 더욱 확고히 하겠다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인민은행 총재가 외국 중앙은행 관계자들과의 회담을 위해 해외로 나갈 일이 늘어나면서 중국 정부와 금융 정책을 직접 논의하기 어려워졌다. 게다가 영어에 능통한 이 총재는 국제기구에서의 활동도 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당서기직을 분리해 인민은행 총재가 자리를 비울 때도 영향력 있고 강력한 논의가 가능하도록 하며 부처 간 토론에서 인민은행을 대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NYT는 설명했다.
인민은행이 두 명의 수장을 갖게 됐으나 정책 충돌은 없을 전망이다. 궈 주석은 이 총재처럼 개혁적인 성향으로 분류된다. 두 사람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그들은 좋은 동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시진핑의 경제 책사’ 류허 중국 경제 담당 부총리하에서 부채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 경제 위험을 방지하는 동시에 금융 부문의 개방을 촉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 총재는 이날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개발 포럼에서 중국이 규제·감독을 통해 금융 위기를 예방하는 동시에 개방 문호를 더욱 넓힐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개방은 발전으로 이끄는 반면 폐쇄는 낙후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의 금융 개방이 규제가 사라지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면서 “금융 부문의 개방과 재정적 위험 방지를 동등하게 강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금융당국의 세 가지 주요 임무는 신중하고 중립적인 통화정책을 구현하고 중국 금융 부문의 개방을 촉진하며 재정적 위험을 완화하는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WSJ는 금융 부문의 추가 개방은 무역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