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 칼럼] 부실기업 이대로 둘 건가

입력 2018-03-3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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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초빙교수, 전 고려대 총장

경제가 저성장의 함정에 빠져 부실기업을 양산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3년 이상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전체 기업의 15%에 육박한다. 금리인상이 본격화하면 산업 기반이 붕괴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최근 대우건설은 호반건설에 매각을 결정했다. 뜻하지 않게 3000억 원 규모의 해외 손실이 드러나 매각이 무산됐다. 금호타이어는 중국 업체인 더블스타에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해외 매각에 대한 노사 합의가 어려워 법정관리 가능성이 크다. 한국GM은 정부 및 노조와 구조조정 협상을 벌이고 있다. 협상이 여의치 않아 부도 처리의 수순을 밟을 수 있다. 산업 현장 곳곳에서 부실기업 정리가 차질을 빚으며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산업 발전의 혁신과 성장동력 창출을 위해 부실기업의 정리가 시급한 상황이다.

정부는 산업구조 조정의 3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정부는 산업진단시스템을 구축해 사전에 부실 산업을 진단할 방침이다. 또 펀드를 조성해 시장 중심의 구조조정을 할 예정이다. 더 나아가 금융 논리와 산업 논리를 균형적으로 반영해 구조조정을 할 계획이다. 정부의 구조 조정 원칙은 기업을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기업을 살리기 위한 구조 조정이라는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자리우선이라는 정부의 기본정책 기조에 묶여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 의문이다. 더구나 구조 조정에 대해 노조의 반발이 클 전망이다.

최근 정부는 새 원칙에 따라 성동조선과 STX조선의 구조 조정 방안을 마련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이 두 회사는 존속가치청산가치보다 낮다는 회계법인의 실사보고에 따라 청산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정부는 성동조선은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고, STX조선은 인력을 40%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금융 논리보다는 산업 논리를 중시하여 가급적 기업을 살려서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부실 정도가 심하고 대량 해고가 필요해 구조 조정 자체가 쉽지 않다. 더구나 조선 경기의 회복이 불투명하여 경영 정상화가 어려운 상태다. 자칫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자금만 더 투입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주요 부실기업을 인수해 관리하는 산업은행이 문제다.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으로 정부의 지시에 따라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구조 조정이 시장 논리가 아니라 정치 논리에 따라 이뤄지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대기업을 쓰러뜨리면 실업자가 발생하고 지역 경제가 타격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대마불사의 논리에 따라 자금을 대규모로 투입하는 경우도 있다. 그 결과 산업은행은 부실기업에 자금을 투입하고 정부는 산업은행에 국민 세금을 연쇄적으로 투입하는 악순환이 구조화했다. 산업은행은 현재 108개의 부실기업을 출자회사로 관리하며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이번에 구조 조정 방안을 확정한 성동조선과 STX조선에도 산업은행은 12조 원에 이르는 혈세를 투입했다.

정부는 사생결단의 의지로 부실기업을 정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경제가 생명력을 잃는다. 이런 견지에서 산업은행부터 구조 조정을 할 필요가 있다. 과도한 조직을 축소하고 전문성을 높여 부실기업의 관리와 구조 조정을 시장 논리에 따라 추진해야 한다. 낙하산 인사를 차단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근본적으로 기업의 구조조정은 시장이 해야 한다. 적자생존의 시장 기능이 발전하면 경영이 부실한 적자 기업은 주가가 떨어지고 은행 대출이 막혀 스스로 도태한다. 반면 경영이 건전한 기업은 주식 투자가 늘고 은행 대출이 저렴해 지속적으로 발전한다. 경영이 부실해도 생존의 가치가 있는 기업은 인수나 합병을 통해 새로운 기업으로 태어난다. 증권시장, 은행시장, M&A시장의 발전이 기업의 부실 정리와 지속 성장의 근원적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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