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 "아들아 조금만 참거라"

입력 2008-03-25 08:26 수정 2008-03-2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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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말 많은 정의선 대표 퇴진. '문책성'아닌 '숨고르기'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아들 정의선 기아자동차 사장이 올 주주총회에서 대표직을 물러난 것에 대해 뒷말이 무성하다.

재계와 증권가 일각에서는 이번 정 사장에 대한 인사가 기아차 실적부진에 대한 '문책성'인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편으로는 정 사장 보호차원에서 이뤄진 일로 후계구도의 '숨고르기'차원에서 이뤄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번 인사를 통해 재계 2위 현대차그룹의 '후계구도 과정'속도가 더뎌지게 될 것으로 보이지만 상황이 호전되는 즉시 정 사장이 대표로 컴백하리라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 '대표'자만 빼고 등기이사 그대로

정의선 사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대표이사에서는 물러나지만 4명의 등기이사 중 한명으로 해외, 재무, 기획 업무는 계속 전담하게 된다. 대신 지난해 10월 부임한 김익환 부회장이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이로인해 기아차는 정몽구 회장, 조남홍 사장 등과 함께 3명의 공동 대표이사 체제를 갖췄다.

기아차는“현대차가 정몽구 회장, 김동진 부회장, 윤여철 사장 중심으로 시스템 경영을 가동중이어서 이를 기아차에 적용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이번 인사에서 의아한 점은 정 사장이 등기이사는 유지하면서 굳이 '대표'자를 왜 떼게 됐냐는 것이다. 현행 상법상으로는 복수의 공동 대표가 인정되기 때문에 3인이든 4인 대표체제든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 사장이 등기 이사직을 유지하는 만큼 의결권에는 영향이 없다. 하지만 법적 측면 등 대외 문제에서는 책임을 면할수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 2년간 기아차 경영 악화로 인한 책임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그룹 차원 포석이라는 얘기다.

기아차에게는 올해 흑자전환을 위해 원가절감과 전환배치, 인원 재조정 등 구조조정을 단행하려면 필수적으로 노조의 협조를 얻어야한다. 대표로 있게 되면 이러한 것에도 직접 책임을 져야함에 따라 잠시 물러나 있게 됐다는 해석이다.

◆ 2연속 적자, 임원 20% 연봉반납, 주주배당 '0'에 대한 문책

지난 2005년 정의선 사장이 현대차그룹의 후계 차원에서 기아차 사령탑을 맡고나면서부터 회사 상황은 좋지 않았다.

기아차는 지난 2년간 연속해서 영업적자가 났다. 기아차의 지난해 매출액은 15조9485억원으로 전년(17조4399억원)에 비해 10% 가량 줄었다. 영업손실도 554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한때 증권가에서는 기아차 '유동성 위기'루머마저 나돈 바 있었다.

올들어 이 회사는 유휴자산을 매각 처분하고 임원들이 연봉 20%를 반납하는 등 자구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올해도 이 회사는 주주들에게 현금배당을 실시하지 못했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등 그룹 5개 상장사들이 올해 회사 주주들에게 현금배당을 실시하는 것과는 대조되고 있다.

물론 회사의 영업악화가 전적으로 대표로 인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기아차 실적 부진은 국내 레저용(RV)시장의 위축, 수출단가 인하, 달러 약세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며 발생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정 사장에 대한 인사가 '문책성'에 있다는 시각은 기아차가 자칫 올해 실적이 더 악화시 후계구도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고 대외적으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해석이다.

이에대해 기아차 관계자는 "올해 환율상승 등으로 기아차 실적이 좋아질 것이 거의 확실시 될 것으로 보인다. 문책성 인사는 말도 안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 총수 부자 후계 속앓이 사연

지난해 이후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사장 부자에게 경영권 승계 문제가 순탄하지만은 않아졌다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지난해 정 회장의 구속사태까지 불러왔던 그룹 계열사 글로비스 비자금 사건 역시 후계 연결고리와 맥이 닿아있는 부문이란 해석이다.

당시 법정에서 글로비스에게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물량 밀어주기가 행해졌고 회사 상장과 합병 등을 통해 생긴 이익금으로 주요 계열사 지분을 취득해 정 사장의 그룹 지배력 확대를 꾀해 왔다는 게 드러나며 비난 여론이 들끓은 바 있었다.

글로비스는 2001년 정 회장 부자가 100% 지분을 출자해 만든 물류회사다. 그룹 물량이 대부분인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비 33.2% 증가한 2조5102억원, 순이익도 21.4%증가한 810억원을 올렸다. 현재도 정 회장 부자가 60%에 가까운 지분을 보유중이다.

지난해 정 회장이 약속한 사회 환원은 1조원에 달하는 글로비스 주식 포기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이로인해 정 사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을 더디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 회장 부자가 다른 계열사를 이용하고자 해도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또 다시 회사기회 편취, 신종 대물림 등의 비난 여론이 확산될 가능성도 높다. 이미 경제개혁연대는 현대차그룹 경영진을 대상으로 주주대표소송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정 회장 부자가 꺼내들 수 있는 카드는 정 사장의 경영능력만 입증된다면 현대차그룹 전반과 주주들 및 외부의 문제제기도 희석시킬 수 있겠지만 지난 2년간 기아차의 실적이 좋지 않았다는 점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게 재계 일각에서 나오는 관측이다.

결국 이번 정 사장의 인사는 현대차그룹 후계과정에서 '문책성'과 '숨고르기'가 복합적으로 얽혀 나온 산물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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