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인사이드] 힘 실린 ‘골목상권 보호’…대·중견기업-소상공인 갈등 확산 우려

입력 2018-04-0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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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기업 소매시장 진출 제동

문재인 정부가 ‘골목상권 보호’ 기조를 내세우면서 중소상공인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하지만 중견업계에서는 ‘소상공인들의 생존권 보호’라는 명분 아래 소비자 편익과 사업권이 침해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중견기업과 중소·소상공인 간 갈등의 불씨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중견기업 유진기업은 최근 중소벤처기업부가 소상공인 생존권을 보호하겠다며 산업용재 소매시장 진출에 제동을 걸자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중기부는 지난달 29일 중소기업 사업조정 권고문을 통해 “유진기업 계열사인 이에이치씨의 에이스홈센터 서울 금천점 개점을 3년간 연기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유진기업 측은 “에이스홈센터가 대형마트가 아닌 주택보수 DIY 매장으로 주변 상권과 큰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금천점 주변 시흥유통진흥사업협동조합 등이 중기부에 사업조정을 신청하자 정부가 ‘골목상권 보호’를 내세워 소상공인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유진기업은 금천점 개점을 위해 이미 물품을 구매하고 직원 70여 명도 고용했으며 금천점을 시작으로 향후 5년 내 전국 20여 곳에 산업용재·건자재 판매 전문점을 열 계획도 세웠지만, 모두 물거품이 됐다.

2차 피해도 예고되고 있다. 페인트, 공구, 생활용품 등을 만드는 320여 곳의 중소 납품업체들은 연 70억~100억 원 정도의 추가 이익과 고용 창출의 기회를 잃게 될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번 권고는 금천점만 해당되기 때문에 유진기업은 다른 지역에서 홈센터를 개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지역 소상공인들도 이번 사례를 참고해 강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만큼 이번 중기부의 사업조정 권고를 계기로 향후 유사한 골목상권 분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골목상권 침해 비판을 받았던 다이소는 문구 판매와 관련해 소상공인들과 상생할 수 있는 자발적인 실천 방안을 마련하기로 하고 논란을 일단락시켰지만 ‘중소기업 적합업종 권고’ 대상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어 향후 논쟁의 소지는 남아 있다.

나아가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소상공인이 다수 진출한 특정 품목에 대기업 진출을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 요구에 대해서도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은 소비자 보호권을 침해하고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게 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견기업 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년간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분야에서 불거졌던 대·중견기업과 중소·소상공인 간 갈등이 산업용재 등을 비롯한 소매업 전반으로 번질 분위기”라며 “소비자들의 편익과 선택권이 무시당하고 중견기업이 새로운 신사업에 진출하는 것조차 원천봉쇄당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MRO 분야의 경우 수년간 갈등하다 지난해 8월 관련 대기업과 중견기업, 중소기업들이 최근 ‘MRO 구매대행업 상생협약’ 체결에 최종 합의했으나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MRO 회사들과의 역차별 논란이 여전히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국내에 진출해 있는 MRO 분야 외국계 기업들이 아직은 국내 점유율이 낮은 수준이지만 앞으로 국내 시장 상황에 따라 ‘상생의 열매’가 이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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