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語 달쏭思] 단자(單子)와 봉투(封套)

입력 2018-04-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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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 주차를 못 해서 그냥 돌아갈 테니 대신 봉투 하나 넣어 주고 혼주한테 말 좀 잘 해 주라. 그리고 네 계좌번호 꼭 찍어 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주말이면 한 결혼식장에서 수십 쌍의 신혼부부를 배출(?)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봉투는 ‘封套’라고 쓰며 각 글자는 ‘봉할 봉’, ‘씌울 투, 덮개 투’라고 훈독한다. 안에다 뭔가를 넣고 입구를 봉하는 ‘겉 씌우개’를 봉투라고 하는 것이다. 중요한 서류를 넣을 때도 봉투를 사용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돈을 건넬 때는 ‘반드시’라고 표현해야 할 만큼 봉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속으로는 어떨지 모르나 겉으로는 돈을 챙기는 행위를 멸시한 유가적(儒家的) 관념이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 있어 현금을 뻔히 눈에 보이게 건네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기 때문에 반드시 봉투를 사용하는 것이다. 물론, 거액의 부정한 돈 거래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과상자나 라면상자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옛날에는 경사나 애사(哀事)에 부조를 할 때 현금보다는 물건을 보냈다. 물건을 보내면서 그 내용을 쓴 작은 종이를 봉투에 담아 함께 보냈다. 이처럼 물건의 목록, 즉 물목을 적은 종이를 ‘단자’라고 했다. 단자는 ‘單子’라고 쓰며 ‘단’은 ‘홑 단’이라고 훈독한다. ‘子’는 의자(倚子), 탁자(卓子) 등에서 쓰는 ‘子’와 마찬가지의 접미사이다. 물건 ‘하나하나’를 적은 종이라는 뜻에서 ‘單子’라고 한 것이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에는 아예 단자는 없이 돈만 넣어 부조를 하다 보니 “대신 봉투 하나 넣어 달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물론 아직도 봉투에 부조금을 넣으면서 ‘금 ○만 원’이라고 쓴 종이 한 장을 넣는 사람도 있다. 이게 바로 옛 단자의 흔적이다. 요즈음엔 아예 현장에는 가지도 않고 온라인 입금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단자’ 문화도 그리운 시대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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