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의 세계경제] 청장년 일자리, 제로섬 게임?

입력 2018-04-0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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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국내와 해외에서 초미의 관심사이다. 과거에도 특히 청년 일자리는 중요한 관심거리였다. 1970년대 영국에서 청년들의 실업난이 길어지며 사회적 고민이 깊던 차에 고령 근로자들의 노동시장 잔류가 청년들의 일자리 진입을 막고 있다는 주장이 득세한다. 전체 일자리 수가 단기간에 제한되었다는 시각에 바탕을 둔 소위 ‘일자리 총량설’이었다. 장년이 일자리를 차지하면 청년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제로섬(zero sum) 상황을 상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기퇴직 제도를 시행한다. 우리 기준으로 하면 60세 전후는 조기가 아니지만 연금 수령 연령을 낮춰 퇴직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퇴직 연령은 이 제도가 존속했던 1988년까지 그때그때 조정되었다. 좀 허술해 보이지만 그리 생뚱맞은 발상은 아니다. 프랑스가 과거 시행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시도되고 있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도 비슷한 발상이다.

일자리 총량설은 나름 설득력이 있다. 학교 교직처럼 청년과 장년 근로자의 대체 관계가 명확한 경우가 있다. 국내에서 취학 연령 학생이 줄어들며 늘어날 일 없는 교사 자리는 그야말로 퇴직 교사와 신규 임용이 대체 관계인 제로섬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일자리 상황도 대동소이(大同小異)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 만도 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청년과 장년의 일자리 경합이 흔치 않다는 것이 주요 선진국과 한국 경제학자들의 결론이다. 조기퇴직 제도를 시행했던 영국에서 진체 취업자와 그 구성이 어떻게 변했는가에 대한 체계적인 검증이 이뤄졌는데, 18~24세와 50세 이상의 실업률은 상반이 아니라 동반 추세를 보였다. 단기간에도 동반 양상이 더 뚜렷했다. 북미와 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결론을 얻었다. 확실하게 청년과 장년 일자리는 대체 관계가 아니라 보완 관계임을 보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실업률이 선진국들에 비해 낮은 수준에 안정적으로 머물고 있어 노동시장 상황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의 상황도 선진국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더 확실히 보여주는 지표들이 있다. 청년과 장년이 실제로 어떤 일에 종사하는지를 보면 두 집단 간 경합 관계의 여지가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2015년 직종별 구직자 자료를 보면 29세 이하의 구직자들은 약 33%가 경영·회계·사무 관련직 일자리를 찾았다. 이에 비해 50세 이상의 구직자들이 몰린 곳은 경비, 청소 관련직, 음식 서비스 관련 업종이었다. 50대 구직자의 9.3%가 20대 구직자 선호 직종에서 구직해 약간의 중첩이 있었다. 직종뿐만 아니라 청년층과 장년층 일자리는 임금 수준, 계약기간, 고용 형태 등에서 차이가 나는데 장년층이 훨씬 열악하다.

한마디로 장년층 근로자들이 청년층이 기피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장년층 때문에 청년층이 관련 직종을 더 기피하게 된다”라고 비판할 수는 있지만 “장년층이 청년층 일자리를 뺏고 있다”는 지적은 잘못이다. 공적, 사적 노후 대비가 모자란 장년층 근로자들의 눈높이는 바닥 수준인 탓이다. 장년층 임금이 낮은 것도 문제이나 의료보험 등 코앞 노후 대비에 대한 지원이 모자란 것이 큰 문제이다.

선진국이나 우리의 경험은 청년, 장년 구별 없이 일자리 총량은 경제 사정이 개선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제 활성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임금 인상으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애먼 실험을 그치고 민간 일자리 늘리기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재정으로 청년 공무원 늘리기뿐만 아니라 장년층 저임금 취업자들의 사회보험 가입 보조 등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OECD 노인빈곤율 1위’의 불명예를 벗기 위해서라도 자력으로 애쓰는 장년 근로자들을 도와야 한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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