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2조9000억 원 유감

입력 2018-04-1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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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명예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어느 대학 동문회에 초청을 받아 정치경제 현실에 대해 강의를 했다. 강의가 끝나자 맨 뒤에 앉아 있던 청년이 손을 들었다. 자신을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이라고 소개했다.

최저임금 문제였다. 강의를 시작하며 그 문제점을 잠시 언급하고 지나갔는데,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 학생이 말했다.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는 시간당 1000~2000원이 목숨같이 중하다. 이런 절박함을 해소하겠다는데 뭐가 문제냐. 청년들의 고통을 알고 하는 말인가.

이렇게 답했다. 지속 가능하다면, 즉 그렇게 계속 받을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하겠나. 일례로 자영업자들을 봐라. 다른 나라의 2배, 3배,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생태계 속에 있다. 시간당 1000~2000원 더 주는 게 결코 쉽지 않다. 결국 문을 닫거나 자동화할 것이고, 그러면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부가 그 일부를 보전해 준다지만 그건 어차피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학생이 다시 대안이 있느냐 물었다. 다시 이렇게 대답했다. “자영업자 문제만 해도 신산업 정책 등을 통해 그 수를 줄이거나,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또 이를 받쳐 줄 금융개혁이나 산업구조 조정을 위한 실업안전망 및 평생교육 체계 강화 등과 같이 가야 한다.”

학생이 또 일어났다. “지금의 청와대도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을 것 아니냐. 그리고 직접 정부에 있을 때는 왜 그러지 못했나.”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였다.

아픈 질문이었다. “그래, 알고도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자본이 저항하고 노동이 저항하고… 이런 가운데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주겠다는 약속만 한다. 그러면서 세월이 가는 것이고. 오늘 강의에서 정치개혁을 강조한 것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이다.”

앞줄에 앉아 있던 중년의 참석자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앞으로도 안 되겠구먼.” 옆에 있던 분이 한마디 보탰다. “지금 하는 것 봐. 세금만 퍼붓고 있잖아.”

“맞다”고 했다. 우리의 경우 정부의 정책적 자율성, 즉 특정 이해관계 세력으로부터 떨어져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역량이 떨어진다고 했다. 특히 이번 정부는 노조의 이해관계를 건드리기 힘든 만큼, 산업구조 조정 등 의미 있는 산업정책을 펼 수 없을 것이고, 그 결과 일자리 문제와 청년실업 문제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 했다.

또 한마디 보탰다. 결국 돈으로 이를 메워 나갈 텐데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어려운 상황인 만큼 그것은 결국 대증적 처방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이를테면 최저임금 지원이나 청년수당 등 개개인의 주머니에 돈을 직접 넣어 주는 일을 먼저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주 발표된 2조9000억 원 규모의 청년 일자리 추경안이 이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중소·중견기업 취업자에게 3년간 2400만 원을 지원하고 기존 재직자에게 5년간 1080만 원을 지원하는 등 개개인에게 직접 돈을 쥐여 주는 프로그램들이 주종을 이룬다. 우려했던 바로 그 길이다.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청년들의 어려움은 말 그대로 재난 수준이다. 빚은 늘고 일자리는 없고 일을 해봐야 소득도 낮고. 그러다 보니 쉽게 분노하고 쉽게 우울해진다. 자살률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이래서야 되겠나.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 없이 3년, 5년 한시적으로 돈을 나눠 주는 정책, 이 기간이 지나면 그때는 어떡하나? 추경안 어디를 찾아봐도 이러한 물음에 대한 분명한 설명이나 대답은 없다. 그저 재정건전성을 해치지 않는다는 이야기 정도만 있다. 세금이 잘 걷히고 있고 그래서 돈이 있으니 쓴다는 이야기이다.

다시 물어본다. 몰라서 이러는 것일까. 아니면 알고도 이러는 것일까. 몰라서 이런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알게 되면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닌 것 같다. 알고도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것 같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어떤 정치사회적 구도에 갇혀 있는 것 같다는 뜻이다. 머리가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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