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유주택자 수난시대를 만들려하는가

입력 2018-04-1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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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환 정책사회부장

역시 세상에 믿을 X는 아무도 없나 보다. 빚내서 집을 사라기에 샀더니 금리를 올리고, 어느새 투기세력으로 낙인을 찍었다. 정권이 바뀌고 다주택자는 집을 파는 게 좋겠다길래 사는 집만 남기고 팔았더니 이번엔 세금을 올리겠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정부가 보유세 인상 논의에 시동을 걸었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는 9일 서울 모처에 모여 첫 회의를 열었다. 알려진 바로는 다주택자와 고가주택 보유자가 세금 인상의 주요 타깃이다.

파는 게 좋겠다는 권고에도 버티기에 들어간 다주택자, 수십억 원을 넘나드는 호화주택 보유자라면 그나마 세금 부담을 늘리는 명분이 꽤 있다고 치자.(임대주택사업자로 등록하면 봐줄 듯하던 사탕발림에 넘어간 다주택자나 수십 년째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장기보유자들에게는 양해를 구한다.)

따져보고 싶은 점은 재정개혁특위가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올리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는 대목이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은 주택가격의 과세표준을 결정할 때 적용되는 공시가격의 비율을 뜻한다. 현재 이 비율은 공시가격의 80%로 설정돼 있는데, 이를 100%까지 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공시가격 현실화 방안도 거론된다. 실거래 가격의 60~70% 수준에 머물러 있는 공시가격을 높인다는 이야기다.

쉬운 말로 다시 풀어보자면 실거래가 1억 원짜리 집에 세금을 매길 때 4800만 원~5600만 원으로 잡히는 과세표준을 8000만 원 이상으로 올려 세금을 더 걷겠다는 뜻이다.

특위가 이 방안을 검토하는 이유로는 두 가지가 거론된다. 우선 쉽다. 법을 바꾸지 않고 시행령만 개정해도 실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야당의 반발이 있어도 관철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집중 증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보유세는 과세표준에 따라 구간별 세율이 다르기 때문에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올리면 다주택자와 고가주택 소유자의 세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늘어난다.

“부동산시장을 안정화하고, 부자들에게 조금 더 세금을 부담하도록 하겠다”는 대의는 존중할 만하다. 하지만 당위성 있는 목적이라도 그 수단과 과정에 의구심이 든다면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공정시장가액비율 상향 조정은 다주택자와 고가주택 소유자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세금 부담을 지우는 것은 맞지만, 평범한 1주택자의 세금이 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집을 갖고 있다면 거의 예외 없이 과세표준이 커지게 돼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부동산시장을 안정화하고 집 부자들에게 부담을 지운다’는 당초의 취지는 흐려질 수 있다. 늘어난 세금이 집값에 반영될 수 있고, 집 한 채가 전 재산인 서민들마저 세금을 더 내야 하기 때문이다.

과정도 석연치 않다. 재정특위는 당초 올해 1월에 닻을 올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계획보다 3개월 늦게 늑장 출범했다. 이들이 논의하는 부동산 보유세 개편 방향은 7~8월쯤 내년도 세법 개정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불과 4개월여의 시간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첫손에 꼽히는 재산을 재단하고 여론을 수렴하기에 충분한 시간인지 의문이 남는다. 법 개정이 아닌 시행령 개정 사안인 공정시장가액비율 상향 조정이 거론되는 것도 혹시 충실한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대신 시간에 쫓긴 선택을 하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재정특위 위원장은 참여연대 출신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다. 그는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과 국세행정개혁 TF(태스크포스) 단장, 더불어민주당 공정과세 실현 TF 외부위원을 역임했다. 강 교수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참여연대 2018년 세법 개정방안’에는 현행 0.5~2%인 종합부동산세의 구간별 세율을 1~4%로 인상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그는 민간 위원 30명과 함께 보유세 개편 논의를 이끌어 가게 된다.

강 교수의 전문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세금이라는 수단이 목적을 흔드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곤란할 것이다. 자칫하면 부동산 안정은 명분일 뿐, 결국 세금을 더 걷는 것이 목적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정밀하게 다듬고, 귀를 더 열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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