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는 국정농단 사태를 호되게 꾸짖었다. 국민을 기망하고 대통령 직무 권한을 사유화한 점을 강하게 질책했다.
지난 6일 1시간 40분가량 주문을 읽은 김세윤 부장판사는 “주된 책임은 헌법상 책무를 방기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타인에게 나눈 박 전 대통령과 사익을 추구한 최순실 씨에게 있다”고 말했다.
이제 관심은 항소심에 쏠린다. 검찰이 11일 항소한 만큼 박 전 대통령 측 의사와 상관없이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의 진실 공방이 2심에서 이어진다. 최 씨의 항소심은 이미 시작했다.
◇혐의만 18개…운명 가른 뇌물죄= 박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강요, 공무상 비밀 누설을 비롯해 모두 18개의 혐의를 받는다. 이 중 13개의 혐의가 최 씨와 겹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뇌물수수 혐의 5개 중 3개를 유죄로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는 제3자 뇌물죄가 적용됐다. 제3자 뇌물죄는 공직자에게 ‘부정한 청탁’을 위해 제3자에게 뇌물을 건넬 때 처벌한다.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가 유무죄를 가른다.
재판부는 롯데그룹, SK그룹에 K스포츠재단 추가 출연요구와 삼성의 정유라 씨 승마지원 명목 지원 약속 등을 유죄로 봤다.
반면 삼성이 영재센터에 16억2800만 원, 미르·K 스포츠재단에 204억 원을 지원한 것과 관련해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작업을 내용으로 한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朴 항소심도 보이콧 할까= 지난해 3월 구속된 박 전 대통령은 같은 해 4월 17일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5월 최 씨와 병합심리를 결정했다.
박 전 대통령은 7월 발가락 부상을 이유로 한 달간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재판 보이콧’을 선언한 것은 구속 연장 결정이 떨어진 후 사흘만인 지난해 10월 16일이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재판을 거부했다. 변호인단도 총사퇴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후 건강상의 이유로 재판에 단 한 차례도 출석하지 않았다. 검찰이 구형을 하는 결심공판이나 판결이 있는 선고공판에도 불출석했다. 이러한 태도는 박 전 대통령의 양형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박 전 대통령이 항소심에서 보이콧을 철회할지는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법정에 돌아올 계기나 명분이 마땅치 않다. 박 전 대통령이 보이콧을 통해 일종의 ‘시위’를 한 셈인데 재판부에서 전혀 받아들이지 않아 머쓱한 상황이 됐다.
◇대법 확정까지 상당기간 걸릴 듯=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51명을 재판에 넘겼다. 이 중 상당수가 1심,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기업인 중에서는 이 부회장이 지난해 2월 1심에서 징역 5년에 법정구속된 지 1년 만인 지난 2월 2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 2월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돼 복역 중이다.
이외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국정농단을 방조한 혐의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구속 수감됐다.
박 전 대통령 재판은 최 씨를 비롯해 여러 인물이 각각 연루돼 있고, 대다수가 무죄를 주장하며 혐의를 다투고 있는 만큼 대법원 최종 확정판결까지 올해를 넘겨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대법원이 국정농단 사건들에 대한 선고를 비슷한 시기에 맞춰서 할 가능성이 높다”며 “개별 사건에 대해 먼저 선고를 하면 하급심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줬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