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서 억만장자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블룸버그억만장자지수에서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이 차지하는 자산이 약 1조 달러(약 1069조6000억 원)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올해 새롭게 억만장자 순위에 이름을 올린 실리콘밸리 인사는 드롭박스의 아라시 페르도시 창업자와 비바시스템스의 피터 가스너 창업자 등이다.
그런데 정작 시가총액 8590억 달러를 기록하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회사인 애플에는 억만장자가 드물다. 그나마 애플 이사회 의장인 아트 레빈슨의 재산이 10억 달러에 달하는 정도다. 10억 달러 중 애플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불과하다. 애플의 수장인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재산이 6억 달러에 그치고 있다. 이는 회사의 규모와 회사가 거둔 성과에 비해 보너스나 연봉이 짜다는 의미다.
미국에서 상장된 기업 중 경영진이 받는 연봉을 정리한 블룸버그 임금 지수에 따르면 애플의 경영진이 받은 임금은 성과와 비교해 터무니없이 적다. 회사의 이익 대비 성과급 비율은 상위 200위 중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블룸버그통신은 세후 순영업이익에서 자본비용을 제한 성과급을 비교했다. 쿡 CEO는 작년 회계연도에서 급여 306만 달러, 보너스 993만 달러, 주식상여금 8920만 달러를 받았다. 총 1억200만 달러가량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CEO는 3년 연속 9자리 수당, 즉 수억 달러의 보너스를 받았다. 지난달 테슬라의 주주들은 엘론 머스크 CEO에 26억 달러 상당의 수당을 지급하는 안을 승인했다.
또 지분을 대거 소유한 경영진이 없다는 점은 애플에 억만장자가 드물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1985년 애플에서 스티브 잡스 창업자가 회사를 나갈 때 그는 1980년 기업공개(IPO) 당시 소유했던 지분 15%를 모두 팔았다. 지금으로 따지면 1320억 달러 규모다. 잡스는 1997년 다시 애플로 돌아오면서 1억 달러 규모의 지분을 사들였다. 공교롭게도 당시 애플은 파산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루프벤처스의 공동 창립자이자 오랫동안 애플을 주목한 진 먼스터는 “애플은 죽다 살아났고, 지분 구성은 엉망이 된 상태였다”며 “그 뒤로 중앙집권적인 주식 소유가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반면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CEO, 알파벳의 세르게이 브린·래리 페이지·에릭 슈믹트,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설립자,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CEO·이사회 멤버 잰 쿰 등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서 500위 안에 드는 인물들은 자사의 지분을 비교적 높은 비율로 소유하고 있다. 억만장자 지수에 이름을 올린 다른 MS, 아마존, 알파벳, 페이스북 경영진들도 모두 재산 중 자사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이상이다.
잡스와 함께 애플을 설립한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의 IPO 당시 7.9%의 지분을 보유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자신의 지분을 중간 관리급 직원들에게 넘기며 지분을 점점 줄였다. 현재 그는 지분 신고 대상자가 아니다. 즉 그가 소유한 애플 지분은 5% 이하라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그가 소유한 애플 지분은 수백만 달러에 그친다고 추정한다. 워즈니악은 구체적인 규모는 밝히지 않은 채 “지분 소유는 내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다”라고만 말했다.
한편 애플에 우리가 모르는 숨은 억만장자가 존재할 수도 있다. 애플의 지분을 0.11%만 소유했다 하더라도 이를 자산으로 환산하면 수십억 달러에 달한다. 따라서 20년 넘게 장기근속하고 있는 애플의 조나선 아이브 최고디자인책임자(CDO)와 같은 사람은 상당한 자산가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