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몸값 높아가는 콘텐트 기업

입력 2018-04-13 10:50 수정 2018-07-09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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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00년 타임워너(TIME WARNER)와 에이오엘(AOL:American Online)의 합병은 거래 금액 1640억 달러로 당시 기업 인수·합병(M&A)의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웠다. 후에 타임워너는 이른바 닷컴 버블로 쇠락했던 AOL과 결별했지만, 이 거래는 이전 대규모 M&A 시장을 주로 글로벌 제조사들이 차지해왔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거래 주역이었던 타임워너는 어떤 회사인가. 워너브라더스라는 영화사, CNN, HBO, TBS와 같은 방송사, 타임과 같은 잡지사 등을 거느린 종합 미디어콘텐트그룹으로, 만화 ‘톰 앤 제리’를 비롯한 수많은 캐릭터 저작권과 할리우드 영화 저작권의 상당수를 보유한 기업이다.

2000년 전후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타임워너 사례 외에도 디즈니사와 에이비씨(ABC), 소니뮤직과 버텔스만, 파라마운트와 씨비에스(CBS)의 기업 결합이 줄을 이었다. 이것들은 콘텐트 기업과 방송·통신 기업의 짝짓기라는 데 특색이 있다. 비교적 최근 구글이 유튜브를,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인수한 것까지 더해 보면, 유력한 콘텐트 기업은 여전히 방송·통신·포털 기업의 주요 합병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달 원조 한류스타 배용준이 자신이 1대 주주로 있던 키이스트(Keyeast)의 지분 25.12%를 SM엔터테인먼트에 500억 원에 매각하여 400억 원의 차익을 실현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작년 SK텔레콤은 SM엔터테인먼트에 거액을 투자해 SM모바일커뮤니케이션즈의 2대 주주가 됐다. 그새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는 YG엔터테인먼트에 1000억 원을 투자하여 YG의 2대 주주가 되기도 했다. 최근 우리나라 통신·포털 대기업이 엔터테인먼트 기업에 직접 투자하거나 상호 지분 인수 방식으로 협업하는 것은 일정한 추세를 띠고 있는데, 시차는 있지만 20여 년 전 미국과 유럽에서 이미 경험했던 것이다.

필자는 꽤 오래전 논문에서 옳고 그름을 떠나 저작권으로 무장한 콘텐트 기업이 방송·통신 기업을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작은 방향타가 거대 선박을 마음껏 조종하는 것처럼 이른바 킬러 콘텐트를 갖고 있는 기업이 방송·통신 시장을 선도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2017년 씨제이(CJ)그룹이 내놓은 ‘Korean Made Life Style’이란 동영상 광고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자동차를 수출하는 나라가 음악까지, TV를 수출하는 나라가 드라마까지, 휴대폰을 수출하는 나라가 푸드까지, 건설을 수출하는 나라가 체험까지, 섬유를 수출하는 나라가 스타일까지.” 이 광고를 처음 접했을 때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 경제를 성장시킨 핵심 엔진이 블루칩으로 대변되는 제조업에서 문화산업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콘텐트가 향후 경제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필자의 20여 년 전 주장과 거의 일치했기 때문이다. 이 광고는 특정 그룹을 넘어 우리나라 경제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줄 뿐 아니라 세계적 흐름을 내다본 것이라고 평가된다.

한때 설탕이 주력 상품이었던 제일제당은 CJ로 개명한 후 종합엔터테인먼트 기업인 CJ E&M을 주력 기업으로 두고 있다. 타임워너를 1967년에 인수한 DC코믹스의 전신(前身)이 주차장 관리 회사 ‘키니’와 건물 청소 회사 ‘내셔널 클리닝’을 합병한 ‘키니 내셔널 서비스(Kinney National Service)’였다는 것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최근 콘텐트에 대한 과도한 법적 보호가 문제 되기도 하고, 나아가 개별 콘텐트가 빅데이터를 구성하여 빅 브라더라 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지나치게 쏠리고 있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많다. 이런 우려 속에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데는 영화, 음악, 스포츠만 한 것이 없다는 점에서 거대 포털 기업 간 관심 끌기 경쟁(attention rivalry)은 콘텐트 기업의 몸값을 더욱 올려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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