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의 손편지] “동구 밖 과수원 길~” 그 노래 민요야?

입력 2018-05-0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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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조카 손주가 여럿 있다. 그 녀석들은 고맙게도(?) 나를 ‘교수 할머니’라고 불러준다. 개구쟁이 손자들 틈에 유일한 손녀인 태은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마침 어린이날이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던 것 같다. 나를 보자 소담스럽게 웃으며 내 옆으로 달려온 태은이는 “난 교수 할머니가 몇 살인지 안다”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할머니가 몇 살인데?” 물으니 “으음~ 삽겹살” 하는 것이 아닌가. “오겹살” 아닌 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보다, 마음을 달래며 “그럼 태은이는 몇 살인데?” 물었더니 자기는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란다. “…”

그 즈음 가족들이 다시 모일 기회가 있었다. 내 옆에 찰싹 붙어 앉은 태은이에게 “할머니가 우리 태은이 시집가는 거 볼 수 있으려나?” 슬쩍 떠보았다. 그랬더니 “할머니, 난 결혼 안 할 거야”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은근히 걱정이 되어 “왜 안 하려고 하는데?” 정색을 하고 물어보니 “할머니, 우리 나이 때는 다 그렇게 말하는 거야, 그것도 몰라?” “…”

얼마 후 동네 마트에 문방구류를 사러 갔다가 초등학생들이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4, 5학년 되어 보이는 여학생 세 명이 자신들의 생일파티 준비를 하러온 것 같았다. 생일파티를 위해 풍선도 고르고 각종 장식품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그네들이 나누었던 대사다. “너, 이번 생일파티에 준희(남자친구인 듯) 부를 거야?” “안 부를 거야.” “왜? 걔는 너 이상형이잖아?” “이상형? 세상에 그런 건 없어.”

이런 녀석들 입에서 동요가 흘러나오길 기대하는 것은 박물관에 전시해야 할 구태의연한 생각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우린 어린 시절에 동요를 입에 달고 살았었는데…. 돌아가신 지 어언 20여 년이 되어 가는 엄마는 다섯 남매 중 유독 장남이 불러주는 동요를 좋아하셨다. 오빠의 노래 솜씨는 가히 수준급이었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울 밑에 해바라기 꼬박꼬박”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기찻길 옆 오막살이” “냉냉냉냉 냉냉냉냉 길 가다 다칠라 한눈팔지 말아라”….

오빠는 무슨 노래든 기막히게 잘 불렀고, 그래서 오빠의 노래는 아무리 들어도 싫증나지 않았다. (오죽하면 난 오빠가 집에서 즐겨 부르던 오빠네 중·고등학교 교가를 지금도 기억해서 흥얼대곤 한다.) 그런데 요즘 초등학생들은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폈네…” ‘과수원길’을 부르는 엄마에게 “그 노래 민요야?” 하고 물어본단다.

나 또한 어린 시절 동요를 즐겨 부르긴 했지만 이제서야 노랫말의 참맛을 제대로 알게 된 것 같다. 나이 예순을 바라보는 요즈음, 복숭아꽃 살구꽃 피어오르는 길을 지나가는데 나도 모르게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저절로 나왔으니 말이다.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가 어떤 풍경을 그리려 했는지, 어떤 마음을 담으려 했는지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뜻도 모르고 노래만 불렀던 내 어린 시절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어린이들 입에서 동요가 사라진 것은 동요가 더 이상 아이들 마음에 와 닿지 않기 때문일 게다. 아이돌 그룹의 춤과 멜로디와 가사에 흠뻑 빠져 열광하는 우리 아이들은 세월이 흘러 내 나이 즈음 되었을 때 오늘의 케이 팝을 ‘흘러간 옛노래’로 추억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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