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의 세계경제] ‘거래꾼 대통령’에 노벨상을?

입력 2018-05-0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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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제목으로 쓴 ‘거래꾼 대통령’은 자신이 타고난 협상의 천재이며 세상만사를 모두 거래로 보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묘사하는 영어 표현 ‘transactional President’를 번역한 것이다. 좀 희한한 표현이지만 그만큼 범상치 않은 세계관(世界觀)을 지닌 트럼프를 설명하는 말로, 미국 언론에서 쓰이고 있다.

이런 라벨을 정당화하는 예는 무역 분야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트럼프는 취임 즉시 전(前) 정부가 공들였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했다. 한꺼번에 여러 나라가 일괄적으로 무역장벽을 낮추는 다자간의 장기적 합의보다 그때그때의 협상을 통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간 미국이 체결한 무역협정이 다 틀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TPP 참가국,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당사국들은 난감한 처지가 되었지만 그건 남의 사정이고, 미국에 이익이 되면 그만이라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발상이다. 이는 두 가지 상반되는 고려 사항 중 어떤 것이 더 크게 작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첫째, 앞으로 미국은 경제 분야의 국제무대에서 협상 상대국으로서 변덕스러운 나라로 여겨져, 그에 상응하는 부담을 감수하게 될 것이다. 물론 2020년 이후 미국의 새 정부가 열심히 설득하겠지만 다른 나라들은 이미 미국이 했던 ‘국제적 약속’ 뒤집기를 여반장(如反掌)으로 여기는 정치인과 유권자의 행태를 보았다. 앞으로도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할 장치가 없기 때문에 새 정부의 설득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경제학의 ‘규칙 대 재량’문제와 비슷한 면이 있다. 정부가 미래 정책에 대해 약속해 국민들이 이를 믿고 행동한다고 하자. 실제 미래가 도래했을 때 약속과 다른 정책을 실행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롭다고 하면 정부는 약속과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런 게임이 되풀이되면 정부가 신뢰를 잃어 사후적으로 약속을 어기는 일을 삼가게 된다. 트럼프 이후 미국도 손상된 이전의 협약들을 복구하고 새로운 국제적 협약을 성실히 이행하면서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둘째, 미국이 세계 최대 경제라는 유아독존적 지위에 따르는 특권이다. 중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에 미국은 상당히 개방되어 있으며, 높은 구매력의 소비자와 기업이 많은 가장 중요한 시장이다. 그래서 무역을 하는 나라라면 미국을 외면할 수 없다.

이런 점을 간과할 리 없는 협상의 천재는 1994년 발효된 이후 북미 3국의 경제 얼개의 일부가 된 NAFTA 무효화를 선언하고 억지로 재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무모한 일이다. ‘무효화’로 협박할 협정이 없는 상대국들에는 임의적으로 관세 인상과 쿼터 조치를 내세워 위협하고 있다.

물론 관세 부과와 수입제한 조치에 따른 미국 경제의 득실은 확실치 않다. 오히려 손실이 더 클 개연성이 높다. 미국 기업의 대부분은 저비용으로 중간재를 해외에서 조달해 생산하는 산업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수입품 가격이 오르고 조달이 어려워지면 미국 내의 생산과 고용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거래꾼 대통령’에겐 경제 전체의 득실도 자신의 정치적 지지자 기반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면 그만인 듯하다. 그러니 몇 년 후 나라에 어떤 부담이 남겨지는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세계 2대 경제 대국 중국의 태도가 녹록지 않다. 2년 후 결과가 불확실한 선거를 치러야 하는 미국의 대통령과 달리 장기 집권을 확보한 시진핑은 미국과의 관계가 당분간 냉각되어도 감수할 수 있다는 생각인 듯하다. 아울러 중국은 미국으로부터의 수입품 중 트럼프 지지자들이 많은 지역의 농산물 수입 제한 등 ‘거래꾼’ 성격을 띤 보복 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우리의 처지가 안타깝다. 정부가 ‘트럼프의 노벨평화상 후보 만들기’에 공들일 모양인데, 얼마나 값을 쳐줄지 모를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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