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억 원대 뇌물수수 및 350억 원대 횡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명박(77) 전 대통령이 삼성그룹의 다스 소송비 대납과 관련해 혐의를 부인하며 사실조회를 신청했다. 삼성과 다스의 소송을 대리했던 에이킨검프 사이에 다스와 무관한 자문 거래 등이 있었고 이 대가로 돈이 건네진 것이라는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정계선 부장판사)는 10일 오후 2시 10분부터 이 전 대통령의 2차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이 전 대통령 측 강훈(64ㆍ사법연수원 14기)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은 삼성이 미국 소송에 관여했는지 소송비용을 대납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보고받은 사실도 없다"며 "에이킨검프와 삼성 사이의 특수한 업무에 대한 대가로 돈을 지급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다스의 소송비용을 대신 내주는 대가로 삼성으로부터 현안을 해결해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는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청탁은 없었고 청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공소장에 기재된 바 없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이 전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공직 임명이나 사업 지원 등을 명목으로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성동조선해양(22억5000만 원) △대보그룹(5억 원) △ABC상사(2억 원) 등 민간 영역에서 건네받은 금품에 대해서는 뇌물이 아닌 정치자금이라고 주장했다. 뇌물이라고 해도 공직 임명이나 사업 지원 등이 대통령 직무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에 뇌물죄가 성립될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이에 검찰은 "공직 임명 등은 대통령 직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대법원 판례에 따라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날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를 모두 채택해 총 14회에 걸쳐 서증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오는 23일부터 주 2회씩 공판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에 강 변호사가 이 전 대통령의 건강 문제로 증거조사기일에 불출석 의견을 냈지만, 재판부는 "휴정을 하더라도 기일을 줄이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 변호사는 공판준비기일 후 기자들과 만나 "의무실에서 간 수치가 계속 높게 나와 외래진료를 권하고 있는데 이 전 대통령이 특별대우 받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며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를 모두 동의한 배경에 대해서는 "재판에 나올 증인 대부분이 대통령과 5년 동안 같이 일했던 직원"이라며 "검찰에서 (그렇게) 진술하게 된 개인적인 사정들이 다 있을텐데 추궁하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다고 이 전 대통령이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객관적 물증으로 법리싸움해달라는 게 이 전 대통령의 뜻"이라며 "오는 23일 첫 공판에 (이 전 대통령이) 출석해 모두진술을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 전 대통령의 3차 공판준비기일은 오는 17일 오후 2시 10분에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