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현지화란 자국민의 개인정보를 국가 내 서버에 보관하는 조치를 뜻한다. 유럽의 국제정치경제연구소(ECIPE)는 2016년 선진국에서 시행된 데이터 현지화 조치 건수가 10년 전보다 3배 가까이 증가한 84건이었다고 밝혔다. 다국적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세계 국내총생산(GDP) 내 데이터 무역의 가치가 상품 교역의 가치보다 커지는 등 국제적인 데이터 이동이 활발해졌다. 이에 각국이 데이터를 소중한 자산으로 보고 보호주의에 나선 것이다.
EU는 회원국 내 정보 이동까지 제한하며 개인정보 이동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오는 25일 발효를 앞둔 EU의 개인정보보호규정(GDPR)에는 사용자의 정보 삭제 요청 권리, 데이터 이동 권리 등 강화된 개인정보 보호 정책이 포함됐다. 인터넷거버넌스글로벌위원회(GCIG)는 도박이나 과세, 은행 업무 등에 관한 데이터 이동 제한이 EU의 GDP를 0.5% 감소시킬 것이라고 추정했다.
중국의 데이터 현지화 정책은 유럽의 GDPR보다 엄격하다. 중국은 인터넷 검열 시스템인 만리방화벽에 만족하지 않고 2016년 중국 내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자국 서버에만 보관하도록 하는 사이버보안법을 통과시켰다. 이로 인해 애플은 지난 2월 중국 내 사용자들의 정보와 데이터를 구이저우성에 보관하기로 했다. 미국상공회의소는 데이터 현지화가 강화될 경우 2025년까지 중국의 GDP가 최대 3.4% 감소할 것이라고 경종을 울렸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만 해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국가 간 데이터 이동을 보장하는 규약을 포함하는 등 데이터 보호무역주의를 반대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TPP를 탈퇴하고 난 이후 데이터 무역 자유화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미궁 속으로 빠졌다. 미국 의원들은 지난해 11월에는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권한을 강화하는 한편 자국민의 개인정보와 유전자 정보 유출을 방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하며 중국의 데이터 보호주의에 맞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데이터 보호주의가 강화되면서 다국적 기업들의 고충은 커지고 있다. 데이터 현지화에 드는 비용을 모두 부담해야 하는 것은 물론 정보가 분산되면 효율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스웨덴 대형차량 제조업체 스카니아의 하칸 쉴트 전략사업부 책임자는 “국가 정책이 항상 바뀐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IBM 브뤼셀 지사의 니콜라스 호닥 정부 기관 대응 책임자도 “데이터를 가장 잘 처리할 수 있는 곳으로 전송하지 않으면 인공지능(AI) 등의 분야에서 고객들에게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며 우려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