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식 회장, 상속세 폐지주장 논란 확산

입력 2008-04-07 14:12 수정 2008-04-07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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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위협 Vs.세금이나 제대로 내라

지난 4일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CJ그룹 회장)이 한승수 총리 초청 전국상의 회장단 간담회에서 '상속세 폐지'를 새 정부 최우선 과제로 건의해 논란이 일고있다.

손 회장은 "상속세를 내기 위해선 상속받은 주식이나 부동산을 처분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경영권이 위협받는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는 상속세 폐지에 대한 대안으로“상속재산을 처분하는 시점에서 자본이득세를 양도소득세를 과세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손 회장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상속세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로 '경영권 유지'를 전면 명분으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이에대해 시민단체들과 학계 일부에서는 실제로 재벌그룹들이 제대로 납부도 하지 않고 편법을 동원해 부의 대물림을 추진하고 있으면서도 완화도 아닌 폐지를 주장했다는 점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재계가 아직도‘재산 상속’과 '경영권 승계'를 동일선상에 놓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재계, 친기업 정부 내친김에 폐지 나섰나

이번 손 회장의 발언이 있기 전부터 재계는 줄곧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의 등을 중심으로 주식상속 할증과세를 폐지 등 상속세율 인하 및 폐지를 외쳐왔다. 캐나다, 호주, 이탈리아 등이 상속세를 폐지했고 지난해 미국도 폐지를 추진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게 재계의 입장이다.

재계는 지나치게 높은 상속세율이 오히려 각종 편법 상속을 불러오고 있는 만큼 세율 인하 및 다양한 상속세 납부제도를 도입해 떳떳한 기업 승계를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을 피고 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는 새정부는 상속세 완화에 대해선 가업승계 중소기업의 상속세에 경우 감면한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지난 4일 대한상의 간담회에서 손 회장의 건의에 한 총리는 “중소기업에게는 매우 중요하므로 좀더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일정한 선을 그은 것으로 전해진다.

주무부처인 지식재정부는 전반적인 세제개편이 이뤄질 8월까지 상속증여세법에 대해 검토할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속에 재계는 더욱 강하게 상속세 폐지 관련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 상속세 제대로 내고 있나

재계가 주장해온 대로 상속증여세법이 경영권 안정에 발목을 잡고 있지는 않다는 주장들도 만만치 않다.

상속증여세법은 부의 집중을 막고 누구라도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하자는 기회균등의 원리에 따라 도입됐다.

현행 상속세는 상속 재산의 규모에 따라 10~50%의 세금을 내도록 돼 있다. 과세표준이 30억원이 넘을 경우에는 상속재산의 50%를 세금으로 물어야 한다.

재계는 참여정부 동안 상속증여세가 2003년 1조3000억원에서 지난해에는 2조8000억원으로 불어나 기업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대주주 지분이 낮은 기업의 경우 지분을 상속할 경우 상속 및 증여세로 대주주 지분이 감소하게 돼 경영권 세습에 문제가 될수 있다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재계가 세금을 제대로 납부하고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2005년 사망자 중 상속세 납부 대상은 총 1816명이었다. 2006년 납세분을 기준으로 실제 상속세를 낸 사람은 납부사유가 생긴 30만4215명 중 2221명 뿐이었다. 그해 상속세 납부액도 7575억원에 머물러 3조원에 육박하는 종합부동산세 세수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시민단체들은 따라서 세금 폐지가 이뤄진다면 실익이 일부 계층에게만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재계가 전세계가 상속세가 폐지되는 경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하지만 실례로 캐나다의 경우 자본이득세가 50%를 상회한다. 상속세가 이름만 폐지된 것으로 유사한 세금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 세금안내고 편법 대물림 수단 동원 전환

재벌그룹들의 상속증여세를 내지 않는 대신 미흡한 법 제도를 이용해 각종 편법을 동원해 부를 대물림하고 있다는 논란은 식지 않고 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삼성SDS 신주인수권부 사채'등 삼성그룹식 편법 상속이 논란을 일으키자 지난 정부에서는 상속증여세법에 조세포괄주의를 도입했다. 조세포괄주의란 상속 및 증여와 관련 과세요건이 비슷하기만 하면 과세당국이 세금을 사후에라도 물릴 수 있게 하는 개념이다.

이런 강화된 규정에 따라 재벌그룹의 총수일가들은 법망을 피해 세금은 내지도 않으면서 새로운 부를 물려주기 신종 수법을 동원하고 있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지적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현행 그룹총수가 자제들에게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 주고 그 회사에 다른 계열사들의 물량을 몰아 재산을 늘리고 이후 늘어난 재산으로 주요 계열사들의 지분을 사들여 그룹 지배권을 확보해 나가는 방법이 꼽힌다.

정몽구회장과 정의선 사장이 납입자본금 50억원을 투자해 출발한 현대기아차 그룹의 물류 계열사인 글로비스는 유가증권시장 상장과, 계열사들의 일감몰아주기로 1조원이 넘는 이익을 총수부자가 가져간 것으로 시민단체들은 지적하고 있다.

결손법인에게 증여하는 것은 과세되지 않는 현행법의 맹점을 이용해 신격호 회장이 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네개 법인에 2000여 억원을 무상 증여한 것도 한 사례다.

저가에 주식을 매각한 비상장 계열사(한화S&C)지분을 아들3형제에게 넘겨 경영권 승계 자금 마련 의혹을 받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등도 시민단체들로부터 편법 부의 대물림과 관련 논란이 되고 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재벌그룹들이 상속세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조세 행정의 맹점을 이용해 편법으로 부를 대물림하면서 재계가 혜택을 더 달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우리나라 재벌들이 재산상속과 경영권 승계를 동일시하는 것에서 상속세 폐지가 제기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경제개혁연대는 “경영권은 주주들로부터 위임받은 것으로 총수 일가가 사적으로 물려받는 게 아니라 재산권과 경영권은 별개라는 점이다. 워렌 버핏, 빌 게이츠 등은 부의 지나친 편중을 막기 위해 상속 및 증여세는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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