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까지 포토라인에 섰다. 일명 ‘물벼락’ 갑질이 촉발된 지 한 달 반 만의 일이다. 조현아·현민 자매를 겨누던 사정당국의 칼날이 조 회장으로 옮겨 가는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정기관의 칼날이 조양호 회장 일가에 집중되면서 그룹을 둘러싼 ‘오너 리스크’도 갈수록 커지는 모습이다.
28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따르면 경찰은 이 이사장을 폭행·상해 등 혐의로 이날 오전 10시 소환해 조사했다.
이 이사장은 현재 퇴직한 한진그룹 관계자와 자신의 운전기사 등에게 고성과 욕설을 퍼붓고 물리력을 행사한 혐의(폭행)를 받고 있다. 경찰은 한 달간 이 이사장에게 폭언·폭행을 당했다는 한진그룹 계열사 전·현직 임직원과 운전기사, 자택 경비원, 가사도우미 등을 광범위하게 조사해 10명이 넘는 피해자를 확보했다.
경찰은 조사를 신속히 마무리한 후 이 이사장의 신병처리를 결정할 계획이다. 특히 상습폭행·특수폭행 등의 혐의를 추가로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는 폭행죄와 달리 폭처법상 상습폭행, 특수폭행죄는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처벌이 가능하다.
대기업 총수 부인이 폭행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러나 한진 총수 일가의 ‘치욕(?)’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업무방해, 밀수, 관세포탈, 재산국외도피,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 한진그룹 총수 일가를 상대로 한 수사가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이후 조 회장에 대한 소환조사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 회장은 아버지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의 재산 증여 과정에서 해외재산을 신고하지 않아 수백억 원대에 달하는 상속세를 탈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그룹 측은 논란이 된 해외 상속분에 대한 상속세 납부를 시작했다고 밝혔으나 검찰은 해외밀수 의혹과 함께 비자금 조성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총수 일가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 압박이 이어지면서 한진그룹은 ‘오너 리스크’로 몸살을 앓는 모습이다. 실제 이번 사태로 인해 대한항공과 진에어는 대외적인 이미지 훼손에 따른 실적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특히 진에어의 경우 조 전 전무의 불법등기 이사 재직 문제로 ‘면허 취소’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에 7월 예정이었던 취항 10주년 기념행사도 규모를 대폭 축소키로 했다.
내부 갈등도 문제다. 총수 일가의 비리 관련 제보와 증언을 내놓던 대한항공 직원들이 보다 조직적인 대응을 위한 대한항공 직원연대를 출범하면서 기존 노조와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다.
대한항공 한 직원은 "벌써 한달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이번 사태가 언제 해결될 지 직원들도 답답한 상황"이라며 "직원들은 회사가 잘 되길 바라고 있을 뿐이며 이를 위해서는 각종 불법 행위를 저질러 온 총수 일가의 사퇴만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한항공 직원연대가 새 노조의 탄생이 될 지는 지켜봐야 할 상황이나 현재 어용노조가 직원들의 입장을 대변해 줄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