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호의 고미술을 찾아서] 나라(奈良)국립박물관에서

입력 2018-05-2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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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奈良)는 왠지 친근함이 느껴지는 도시다. 같은 고도(古都)라도 산에 둘러싸여 분지를 이루고 있는 교토(京都)와는 달리 넓은 들의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있다. 백제의 고도 부여의 느낌이라 해야 할까? 그 옛날 도래인(渡來人)들이 이역만리 이곳에 정착할 때 고향 땅과 비슷한 곳을 찾아 새 삶터를 일구었기 때문일까?

반년 만에 다시 찾은 오월의 나라, 신록이 싱그러웠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도다이지(東大寺)와 가스가타이샤(春日大社)를 제쳐두고 나라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 ‘春日大社 창건 1250년 기념특별전’을 보기 위해서다.

가스가타이샤는 잘 알려진 대로 나라(710~794)와 헤이안(794~1185) 시대 일본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후지와라(藤原) 가문의 수호신사(우지샤·氏社)다. 1250년 전인 768년에 창건되고 지금껏 잘 보존된 것도 대단하지만, 후지와라 가문의 수호사찰(우지데라·氏寺)인 인근 고후쿠지(興福寺)와 더불어 신불습합(神佛習合) 문화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증거하는 의미 깊은 곳이다. 전국에 3000군데가 넘는 말사를 두고 있으며, 1998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번 특별전(4.14∼6.10)은 가스가타이샤를 비롯하여 일본 이곳저곳에 소장되어 있는 관련 유물을 한곳에 모아 가스가 신사의 역사성, 신불습합 문화, 나라·헤이안 시대 이후의 미술 건축 공예를 종합적으로 조명하는 전시다.

나온 유물은 어림잡아 300점은 되어 보였다. 시대적으로 헤이안, 가마쿠라 유물들이 많았고, 후대인 무로마치, 에도시대의 것들도 다수 있었다. 칼·활·갑옷 등 무구류, 악기 나무함 등 공예품, 각종 기록물(속일본기, 만엽집 등), 춘일만다라(春日曼茶羅)류의 회화와 불교조각 등등, 말 그대로 천년에 걸쳐 가스가를 위해 만들어지고 기록되고 보존되어 온 유물들이다. 절반 가까이가 국보 또는 중요문화재이니 전시 수준을 짐작케 한다.

나는 한나절 내내 전시장에 머물렀다. 관심 기울여 살피고 또 살피니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일본 미술 공예의 특징이 눈에 들어온다. 선진 문물이 일방적으로 한반도에서 전해지던 나라시대와 그 흔적이 짙은 헤이안시대 유물에서는 그 조형미가 눈을 편안하게 했으나, 후대로 갈수록 일본색이 뚜렷해지는 번잡한 색채와 과도한 인공미에 눈은 피곤해하고 있었다. 전시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는 개안(開眼)의 희열을 느끼면서 그들의 지극한 보존문화가 놀라웠고, 그 위에 우리의 현실이 겹쳐질 때는 이름 모를 고통이 뒤따랐다.

그런 복잡한 심사를 뒤로 한 채 지하 통로로 연결되는 본관의 불상전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대별로 100여 점의 불교조각 명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백제로부터 불교가 전해진 6세기 중반 이후 만들어진 초기 불상은 한반도의 불상과는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터치나 조형미가 비슷하다. 특히 아스카 나라시대 작품으로 소개된 소형 금동불상들의 경우, 삼국 또는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라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헤이안 후기, 가마쿠라시대로 오면 일본적인 미감(美感)이 짙어지면서 우리 불상과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 배경에는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한반도와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독자적으로 국가 발전의 길을 걷기 시작한 시대 상황에다 풍토에 적응하는 삶의 방식에 따라 미감이 달라지는 미술문화의 속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나의 관람 행보는 박물관 인근의 가스가타이샤와 고후쿠지로 이어지지만, 이처럼 일본의 고미술 현장을 돌아볼 때면 늘 부러움, 슬픔, 고마움이 교차한다. 문화예술을 대하는 저들의 안목과 정신이 부럽고, 찬란했던 우리 문화유산 대부분이 저들이 저지른 병화(兵禍)와 약탈로 사라져 버린 것이 슬프고, 그럼에도 역설적으로 일본 곳곳의 신사와 사찰, 민간에서 우리 문화유산을 신주 단지 모시듯 보존해온 저들이 고마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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