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본 장면 둘을 소개한다. 먼저, 그 하나. 마속의 잘못으로 크게 패해 빈 성(城)에 홀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던 제갈량, 그는 그 성의 높은 곳에 올라 거문고를 타며 사마의의 대군을 맞는다. 제갈량의 죽음이 예상되는 상황. 하지만 이 한가로운 모습을 본 사마의는 매복이 있을 수 있다며 퇴각을 명한다.
‘삼국지’는 이를 두고 제갈량의 ‘공성계(空城計)’, 즉 빈 성(城)으로 상대를 홀린 계략의 성공으로 적는다. 하지만 드라마 ‘사마의’는 아니다. 제갈량이 죽으면 대적할 적이 없어진 자신의 황제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 생각한 사마의가 자신을 위해 제갈량을 살려두는 것으로 그린다. 현실 정치와 시장(市場), 그리고 국제관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또 하나, 위수(渭水) 한쪽에 진을 친 제갈량은 사마의를 전투로 끌어내기 위해 별 수단을 다 쓴다. 하지만 사마의는 꼼짝도 않고 수비만 한다. 이유는 하나, 군량 문제나 제갈량의 건강 문제를 볼 때 시간은 자신의 편이라 판단한 것이다. 결국 병약한 제갈량은 죽고, 사마의는 싸우지도 않고 승리를 거둔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반드시 꺾어야 할 상대가 공동의 운명체가 되기도 하고, 같은 편이면서도 목숨을 건 견제가 행해진다. 또 상대의 강점을 역이용하기도 하고, 상대의 허점을 파악해 싸우지 않고 이기기도 한다.
드라마를 보며 우리의 남북 문제와 북핵 문제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과연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상대적으로 약한 나라인 만큼 큰 힘을 제어하고 이용할 지혜와 사마의 같은 책사가 필요할 텐데, 우리는 과연 이를 가지고 있는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 이를테면 북한만 해도 그렇다. 중국까지 제재에 동참하면서 내부의 경제사회적 상황이 극단적으로 나빠지고 있다. 그렇다고 전쟁을 할 형편도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끝장낼 것이기 때문이다. 제갈량의 군대처럼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양상, 결국 비핵화 이외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 우리가 굳이 비핵화를 설득하거나, 비핵화 의지가 있다 없다 이야기하며 북한을 대변할 이유가 있을까. 우리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미국이나 중국 등이 북한의 입장을 모를까. 또 냉엄한 국제관계 속에서 우리가 이야기한다고 이들 국가가 안 믿던 것을 믿거나, 자국의 이해관계를 뒤로할까.
특히 제재를 통해 북한을 비핵화 테이블로 끌어냈다고 생각하는 미국으로서는 한국이든 북한이든 이 문제가 김정은 위원장의 의지에 달린 것처럼 말하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의 북미정상회담 취소 건도 이에 대한 일종의 짜증이 아니었을까. 취소를 하면서도 진한 여운을 남긴 트럼프 대통령답지 않은 언어에서 보듯, 결국은 할 수밖에 없음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얼마나 잘 하고 있을까.
간간이 들리는 한국 북한 미국 간의 정전협정이나 평화협정 문제도 그렇다. 미국이나 우리가 중국을 뺀다고 해서 중국이 빠질까. 결국 북한을 통해 자국의 입장을 모두 반영할 것 아닌가. 또 동북아 지역에 있어 중국이 보장하지 않는 평화협정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렇게 되면 중국은 북한을 통해 개입할 것은 다 하면서도 평화를 유지시키기 위한 비용, 즉 경제원조 등에 있어서는 소극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된다. 이런 점에서 오히려 중국의 개입을 우려할 게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전면에 나서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새삼 드라마 속의 사마의가 그럴듯해 보인다. 상대의 힘을 지렛대로 이용해 또 다른 상대를 누르고, 움직이지 않으면서 적을 이기는 지혜 말이다. 바삐 뭔가 해 보겠다 움직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혜를 구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오히려 짬을 내어 위대한 책사를 그린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은 어떨까.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한가로이 거문고를 타는 제갈량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