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운명을 거래한 판사들

입력 2018-06-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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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를 기각한다"

재판장의 말이 떨어지자 법정 경위는 피고인을 법정 밖으로 안내했다. 피고인은 방청석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보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벙긋했지만 아무 말도 못 한 채 법정을 빠져나갔다. 앞을 볼 수 없는 어머니는 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걸 눈치채고 "아들, 어떻게 됐노?"라고 물었다. 누군가 "항소 기각됐습니다"라고 말하자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어머니는 몇 발자국 떼지 못하고 푹 쓰러졌다. 법정 경위는 구급차를 불렀고 어머니의 팔과 다리를 주무르며 정신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린 어머니는 아들의 선고 결과를 재차 물었고 항소가 기각됐다는 말에 아들의 이름을 울부짖었다.

선고가 이뤄지는 법정은 늘 긴장감이 감돈다. 선고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재판장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눈을 떼지 못한다. 한번 뱉은 말은 돌이킬 수 없을진대 선고가 끝난 뒤 "한 번만 봐 달라"며 무릎을 꿇는 사람도 있고, 법정 구속된 피고인을 보며 숨죽여 우는 사람도 있다. 법정 내 선고 풍경을 보면 법관은 피고인 당사자뿐 아니라 피고인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짓는구나, 새삼 느낀다.

이 느낌은 금세 서늘함으로 바뀌었다. 사법부가 타인의 운명을 거래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3차 조사 결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상고법원 도입에 대한 청와대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재판 15건을 정부 입맛에 맞게 판결한 정황이 드러났다. 그 가운데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혀 받은 임금을 토해내야 했던, KTX 승무원 판결도 있었다. 운명을 거래한 이 판결로 누군가는 삶을 비관하다 목숨을 끊었다.

"법원의 판단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법원의 판단에 왈가왈부해선 안 된다" 기자가 만난 대개의 법관은 판결을 신성시했다. 타인의 운명을 거래한 의혹 중심에 선 사법부가 법원의 판단을 그 자체로 존중해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법부 스스로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촉구해야 한다. 운명을 거래한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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