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정의 인사이트] 韓 블록체인 정책, 언제까지 ‘독고다이’로 버틸 텐가

입력 2018-06-0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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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2부 차장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블록체인을 키우겠다는 것은 그저 말뿐입니다. 블록체인과 관련된 사업을 한다고 하면 은행에선 법인 계좌도 내주지 않고, 핀테크가 대세인데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해외 송금조차 원활하지 않습니다.”

한 블록체인 기술 스타트업 대표의 하소연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암호화폐 투기 열풍으로 정부 규제가 심해지면서 ‘블록체인’마저 규제의 덫에 갇혀 신산업의 싹을 틔우지 못하고 있다.

시중 은행들은 정부의 보이지 않는 가이드라인으로 인해 블록체인 관련 기업에 법인 계좌 개설을 거부하고 있으며, ‘암호화폐 = 블록체인’이라는 부정적인 인식 탓에 벤처캐피털(VC)의 투자도 쉽지 않다. 자금줄이 막혀 버린 블록체인 기술 기반 사업체들은 개발비를 충당하기 위해 ICO(암호화폐 공개)를 통해 코인을 발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진짜 현실이다. 특히 블록체인 플랫폼은 코인 지급을 통한 ‘보상 체계’가 기반이기 때문에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러한 이유로 업계에서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분리해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생각이 ‘어불성설’이라고 입을 모은다. 투자가 활성화하는 시장에서 기술도 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선 정부가 하루빨리 ‘암호화폐 제도화’에 나서 블록체인 기업들의 거의 유일한 자금조달 수단인 ICO를 허용하는 길밖에 없다는 주장은 이제 반박할 수 없는 명제가 된 듯하다.

이미 정부가 암호화폐 규제 가이드라인 마련의 타이밍을 한참 놓쳤다는 지적도 많다. 암호화폐 투기 열풍에 실명거래제 도입 등을 통해 광풍만 잠재웠을 뿐, 이로 인한 개인투자자들의 피해, 핀테크 및 블록체인 관련 업계 관계자들의 규제 완화에 대한 호소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2016년 11월부터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금융당국이 디지털화폐 제도화 TF팀을 만들어 암호화폐를 제도권으로 편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방향조차 못 잡아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대법원이 ‘비트코인 몰수’를 인정한 첫 확정판결을 내놓으며 암호화폐를 경제적인 무형가치가 있는 자산으로 인정했음에도, 정부는 여전히 “암호화폐는 금융자산이 아니다”라며 제도화에 대한 종전의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암호화폐 지위’를 둘러싸고 정부와 대법원이 서로 다른 입장을 내놓으며 시장의 혼란만 가중한 셈이다.

이는 글로벌 흐름과도 크게 어긋난다. 암호화폐 시장은 이미 골드만삭스와 나스닥, 시카고선물거래소 등이 투자하는 시장으로 성장했지만 우리 정부는 아직도 사설 도박장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규제 정책에 있어서도 선진국에서는 암호화폐가 불법 자금세탁 등에 이용되는 것은 철저히 차단하되 화폐나 상품, 결제 수단으로는 인정하고 제도화를 위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은 주별 지침이 되는 ‘표준규제체계’를 마련했으며, 스위스의 경우 국가 성장 동력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암호화폐 지역까지 지정했다. 암호화폐 관련 규제가 강하다는 일본조차 공적 결제 수단으로 취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음 달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암호화폐 제도화에 대해 논의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G20 등 국제적인 암호화폐 규제 논의 동향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암호화폐의 법적인 기반 마련을 위한 국가 간 협력에 동참하고 국내 제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pu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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