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보는 경제] 청와대 사람들은 자영업자 친구 하나 없나

입력 2018-06-0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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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훈 시인, BCT 감사

통계는 하나의 예술이다. 예술적 암시이다.

대한제국 말의 유명한 화가 허소치(許小癡)가 어느 날 고종 앞에 불려갔다. 고종은 그를 골탕 먹이려고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춘화도 한 장 그릴 것을 명하였다. 얼마 후 소치가 그려 바친 것은, 깊은 산 속 외딴 집 섬돌 위에 놓인 남녀 신발 한 쌍이었다. 산중의 환한 대낮, 닫힌 방안에서 두 남녀의 진진한 일은 알아서 상상하시라는 것이었다. 시인이 행간에 의미를 담아내듯, 화가는 그림 뒤에 그 진경(眞景)을 숨겨 둔다 할까.

그런 의미에서 통계도 하나의 그림이다. 간단하고 명료한 수치나 도표로 현상을 명쾌하게 드러내는 것,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 함축된 의미는 또 얼마나 다양한가.

이런 통계를 두고 사달이 났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1분기 가계동향'이라는 통계는 그 요지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올해 1분기의 소득 최하위 20%(1분위라 한다) 가계의 명목소득이 역대 최대로 급감한 반면 소득 최상위 20%(5분위라 한다)의 명목소득은 최대로 급증해 소득분배지표가 2003년 이래 최악이라는 것이다.

1분위 가계의 명목소득은 128만7000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8% 줄었다. 2분위도 4% 줄었다. 1분위 감소폭 8%는 2003년 이래 최대폭이라고 한다. 반면 5분위 가계의 명목소득은 1015만2000원으로 9.3% 급증했다. 이 또한 역대 최대 증가폭이다. 당연히 소득 분배는 최악의 상태가 되었다. 이에 대한 정부의 설명은 이렇다. 1분위의 소득 감소는 70세 이상 노인의 비중이 늘어났고 임시직과 일용직 일자리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며, 5분위의 소득 증가는 지난해 대기업 영업실적이 전년보다 개선됨에 따른 연말 성과급 증가 등이 요인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소위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에 관한 것이다. 1분위 계층만 소득이 대폭 감소한 결과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때문이라는 의견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 직원을 두지 않은 자영업자가 줄어드는 고용시장의 변화도 1분위 소득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부연했다. 가구주가 노동자인 가구와 아닌 가구로 나눠 보면 '노동자 가구'의 소득은 0.2% 상승한 반면, '노동자 외 가구'의 소득은 13.8%나 떨어졌다. 즉, 영세 자영업자가 소득 감소를 이끈 것이다. 이는 무슨 의미인가?

제 발이 저린 걸까, 청와대가 원래의 자료를 추가 분석하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통계가 핵심 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걸로 나오니 ‘앗, 뜨거워’라 했겠다. 그러잖아도 말이 많은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라는 비난이 나올 것은 불문가지, 하여 국책연구기관에 보다 면밀한 분석을 하게 했다. 그러고는 추가 분석 자료를 교묘하게 해석해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대통령 또한 이를 자랑스럽게 언급했다.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인 효과가 90%”라고.

그런데 이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타격을 받은 자영업자와 근로 의사가 있는 무직자들, 즉 '근로자 외의 가구'는 제외하고 '근로자 가구'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는데 이게 ‘불 밭에 기름’이다. 자영업자 등 '근로자 외의 가구'는 최저임금과 관련이 없다는 말인가. 또 백분위율로 보았을 때 최저 10% 가구는 1.8% 소득이 감소하고 90%는 3.0%에서 8.3%까지 소득이 증가했는데, 10% 가구의 감소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통계는 사회를 파악하는 강력한 도구이지만 결함이 있는 수단이다. 오죽하면 ‘세상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 선의의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라는 말이 있을까. 그럴수록 통계는 조사와 작성, 해석까지 신뢰가 생명이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는 남구로역 인력시장에 나가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아니 자영업자와 전화 한 통화만 해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진단이 왜곡되면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올 수 없다. 청와대 사람들은 정직한 자영업자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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