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리포트] ‘CP 대체’ 기대 컸던 전단채, 도입 5년째 여전히 비주류

입력 2018-06-0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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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 먼 ‘전자단기사채’ 활성화… 제도 개선 시급

2013년 도입된 전자단기사채(이하 전단채) 시장이 최근 발행잔액 50조 원에 육박하는 등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지만, 출범 당시의 기대를 채우지 못하고 여전히 비주류에 머물고 있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단채는 만기 1년 이하의 전자등록증권 형태의 사채다. 기업어음(CP)의 법적 제약과 실물 발행에 따른 발행 및 관리의 제약을 해소해 투명한 단기증권금융시장을 만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또 일반 기업과 금융기관이 보다 편리하게 단기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편의성을 제고한다는 의미도 컸다.

이에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전단채의 도입 취지에 걸맞게 CP를 효과적으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을 위한 당근책과 합리적 수준의 규제 완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비중 5년간 늘었지만…전단채는 여전히 ‘비주류’ = 자본시장연구원이 5월 발표한 ‘전자단기사채시장의 특성 분석과 활성화 과제’ 보고서와 한국예탁결제원 세이브로(Seibro)에 따르면, 국내 전단채 발행잔액은 4월 말 기준 약 48조 원으로 집계됐다. 전단채 발행잔액은 제도가 도입된 첫해인 2013년(13조 원)부터 2014년(22조 원), 2015년(31조 원), 2016년(35조 원), 2017년(43조 원)까지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지난해 전단채 시장은 코스피 활황에 특수를 누렸다. 개인투자자의 신용거래융자가 늘고 증권사의 초단기자금 조달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전단채 발행잔액은 작년 말 기준으로 약 1년 만에 8조 원이나 불어났다. 올 들어서도 4개월 만에 전년 실적의 62.5%에 해당하는 5조 원어치가 순발행됐다. 초단기물인 콜시장 대체 목적은 충족한 셈이다.

이와 함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상승 기조에 불안을 느낀 기관투자자들이 단기자금 운용을 위해 안전한 전단채 펀드를 선택한 것도 전단채 시장 활황에 기여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작년 전단채 시장의 최대 큰손은 펀드시장으로 물량의 70%를 흡수했다. 이는 증권사, 신탁사, 연기금 등의 유망 투자처로 떠올랐다.

하지만 발행·유통시장이 불투명한 CP 중심의 기업자금 조달 통로를 근본적으로 개혁한다는 취지에 비춰볼 때 전단채 시장은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실제 CP 발행잔액을 포함한 전체 단기금융증권시장 내 전단채 비중을 따져보면 올해 4월 말 기준 전체 25.0%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CP 발행잔액은 146조 원으로 전단채의 3배 이상이다. 전단채 비중 25.0%라는 수치 역시 5년 전인 2013년(9.1%)에 비하면 큰 폭으로 늘었지만, 당초 기대했던 CP 대체 효과를 논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 시장에서도 일반 기업들이 전단채를 굳이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유인이 부족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비(非)은행 금융기관인 증권사, 카드사, 캐피털사의 콜시장 대체 수요는 높은 반면, 정작 발행사를 위한 유인책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항공업계와 조선·해운사 등 재무구조가 취약한 업종의 기업들이 올해 1~2월 대거 CP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려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전단채 도입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회의론이 시장에 팽배해졌다.

김동주 한국투자신탁운용 Fixed Income팀장은 “회사채만 해도 CP 3년물과 5년물 중 상대적으로 만기가 긴 쪽의 수요가 많다”면서 “전단채와 CP를 동시에 발행할 여력이 있는 회사라면 당연히 후자를 선택하는 경향이 높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단채는 즉각적 금융 거래마다 빠르게 대응이 필요한 증권사 등 금융기관을 위한 시장이라는 인식이 있다”면서 “증권보고서 작성이나 공시 의무 등 실무 차원에서 느끼는 부담이 커 이 같은 부분에서 규제 완화가 시장 발전에 중요할 듯하다”고 짚었다.

◇기울어진 규제…“CP와 공정한 경쟁할 수 있어야” = 보고서를 작성한 김필규 자본연 선임연구위원은 단기금융증권시장에서 기업들의 전단채의 전환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단채의 짧은 만기로 인한 기업의 불편함을 능가할 만한 강력한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공시 의무가 적은 CP와의 규제 차이로 인한 불공정한 경쟁 환경이 전단채 시장의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는 만큼, 추가적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선 구체적으로는 기업의 증권신고서 제출을 면제해주는 전단채 대상을 미국과 동일하게 만기 270일 미만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단채는 발행조건 등이 예탁결제원을 통해 공시되고 있다. 따라서 증권신고서 의무가 면제되어도 시장과 투자자들에게 정보가 충분히 전달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국내에선 만기 3개월(90일) 미만 전단채로 한정돼 있어 인센티브 제공 범위가 훨씬 작다. 앞서 시장에선 이를 6개월(180일) 등으로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왔지만 실제 법 개정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기업이 만기 3개월이 넘어서는 전단채를 발행하려면 400~700쪽에 달하는 증권신고서를 작성해야 해 기업 부담이 커진다. 또 이를 금융당국에 승인받기 위한 제도적 절차도 필요하다. 이는 만기 1년 미만까지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CP와 분명한 규제 차이를 보인다. 이는 만기 3개월 이상 1년 미만의 단기금융상품을 발행해야 하는 기업이 필연적으로 CP를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제약을 주는 요인이다.

이와 함께 CP에 대한 공시 규제를 강화해 공정한 게임을 할 수 있는 링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김 연구위원은 역설했다. 현재와 같은 간접 방식의 공시에서 벗어나 전단채 수준의 공시체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다. 특히 기업어음의 발행 및 유통금리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는 주장에 방점이 찍혔다.

◇단기금융시장 전반적 정보공개 의무 강화 필요 = 한편, 전단채와 CP를 아우르는 전체 단기금융증권시장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기금융시장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유동화를 목적으로 발행된 단기증권의 정보 제공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

가령 유동화 기업어음이나 유동화 전자단기사채의 경우 기초자산의 특성, 거래 참여자에 대한 내용, 유동화 구조, 발행 증권 회차 정보 및 신용보강 정보 등을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실제 예탁결제원에 등록된 자산 유동화 단기금융증권은 기초자산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나 거래 참가자, 발행 한도, 신용 보강 등의 정보를 담고 있지 않다. 상품 선택에 앞서 투자자들이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해 잘못된 투자에 나설 우려가 있다는 조언이다.

아울러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의 전단채 투자 유인을 강화하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제기됐다. 무엇보다 기관투자자의 전단채 투자 제한이 존재하는지 근원적으로 검토하고 투자자 저변을 확대하는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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