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호의 중구난방] 수제맥주, ‘기울어진 운동장’ 방치 언제까지

입력 2018-06-2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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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2부 차장

“수입맥주에 유리한 주세 구조에 대해 우리도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수입맥주에 대비해 공평한 주세법(종량제)이 만들어진다면 국내에서 생산된 크래프트 맥주도 수입맥주와 비슷한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 본다.” 국내 1위 수제맥주 업체 제주맥주의 문혁기 대표의 말이다.

국산 수제맥주의 인기가 뜨겁다. 4월 세법개정 후속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슈퍼마켓, 편의점 등 소매점에서도 수제맥주 판매가 허용되면서 수제맥주 열기는 더욱 고조되고 있다.

맥주 덕후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소비되던 수제맥주는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로 대기업 총수들을 초청한 호프미팅에서 공식 만찬주로 채택되면서 전기를 맞는다. 당시 대기업 맥주가 등장할 거라는 예상을 깨고 국내 1호 수제맥주 기업인 세븐브로이의 ‘강서 마일드 에일’이 만찬주로 선정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소상공인 간 상생을 강조해 온 정부와 문 대통령으로서는 ‘비정규직 제로’ 원칙을 고수하는 중소기업의 맥주가 매력적이었을 터다.

이후 수제맥주는 순풍에 돛을 단 듯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2012년 59개였던 국내 수제맥주 양조장 수는 2014년 54개로 하락했으나, 이후 꾸준히 증가하며 작년에는 전국 95개 이상의 양조장이 운영 중이다. 국내 수제맥주 시장은 약 400억 원 안팎으로, 전체 맥주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미하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수제맥주가 맥주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달해 성장 잠재력은 충분하다는 평가다. 실제로 신세계나 진주햄, SPC, LF 등 대기업도 앞다퉈 수제맥주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수제맥주 시장이 5년 뒤에 1500억 원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렇다고 수제맥주 업계 앞에 마냥 꽃길만 깔린 것은 아니다. 가격 경쟁력과 다양한 맛, 품질 등을 무기로 국내 맥주산업 전반을 잠식하고 있는 수입맥주와의 경쟁이 과제로 남아 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에서 수입맥주는 500㎖ 4캔에 9000~1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5월에는 세븐일레븐이 스페인 필스너 ‘버지미스터’를 들여와 500㎖ 4캔을 5000원에 판매하기도 했다.

수입맥주가 이처럼 저렴한 가격에 판매될 수 있는 것은 주세 부과 방법이 알코올 함량을 기준으로 세금을 내는 ‘종량세’가 아니라 주류의 출고가격에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국산 맥주에는 제조원가와 판매관리비, 이윤 등을 모두 붙인 순매가에 제조원가의 72%와 주세의 30%에 해당하는 교육세를 매기지만, 수입맥주에는 이윤 등을 제외한 공장출고가와 운임 등을 더한 수입 신고가에 같은 세율을 부과한다. 수입업자가 신고가를 낮게 신고하면 세금을 덜 낼 수 있다. 제주맥주 문 대표의 지적이 바로 이 내용이다.

더욱이 올해부터는 미국산 맥주의 경우 관세가 없어졌고, 7월에는 유럽산 맥주도 관세가 사라질 예정이다. 수입맥주의 가격 경쟁력은 더욱 높아진다는 의미다. 여기에 국내 제조사들은 맥주 제조를 위해 수입하는 보리와 맥아에 매기는 관세도 내야 한다. 이래저래 국내 수제맥주를 비롯한 맥주업계의 부담만 커지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종가세를 적용하는 국가는 멕시코, 터키 등 일부에 불과하고 대부분 국가는 종량세를 적용하고 있다. 맥주도 국내 경제의 일부분을 이루는 산업이다. 지금처럼 수입맥주에 치이다가는 맥주산업 전반의 침체는 불가피하다. 특히 이제 막 꽃봉오리를 피우려는 수제맥주 업계에는 더욱 큰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산업의 보호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역차별은 받지 않고 시장에서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게 주세법을 손보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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