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의 세계경제] 몰려오는 무역전쟁 폭풍우

입력 2018-06-2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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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경제 참모진이 교체되었다. 작년의 의욕적 최저임금 실험의 어처구니없는 중간 성적표를 보면 우리 속담 “누울 자리 봐 가며 발을 뻗어라”가 새 정부 경제팀의 좌우명이 되어야 할 것 같다.

필자는 언론에서 ‘실물경제 감각’이라고 하는 눈치 백단의 공무원보다 깊은 고민을 해 본 학자가 경제정책 수립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섣부른 정책 실험의 책임자들이 교체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 다만 여름철 시커먼 소나기구름이 몰려오듯 해외발 악재가 커지는 여건을 감안하면 경제 참모 교체는 시의적절하다.

예상되는 세계경제 충격은 미국발이다.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 다른 나라들이 교역을 수단으로 미국의 곶감 빼먹기를 하고 있다며 당선되면 혼내겠다고 공언했다. 처음에는 ‘별 사람 다 있다’ 정도로 생각했지만 열광하는 지지자들을 보며 스멀스멀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올 들어 미국이 일방적 관세 인상을 통해 ‘폭리를 취해 온 파렴치범’ 단속을 시작하면서 상대국들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나라들 간의 ‘무역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앞으로 미국과 중국, EU, 캐나다·멕시코가 몇 번 더 관세 인상을 주고받으면 그야말로 전쟁이 본격화할 것이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승자가 없고 피해가 컸던 경험을 상기하며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쟁은 자신의 전력(戰力), 상대편의 지구력에 대한 오판(誤判)에서 시작한다.

미국은 대통령의 협상 능력에 대한 자신감 외에 자국 시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상대국들이 오래 버티지 않고 투항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 같다. 반면 다른 나라들은 트럼프가 2년 후 백악관에서 방을 뺄 것이니 버티기를 불사하겠다는 심사다. 한술 더 떠 2020년 이사를 돕기 위해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피해가 가는 농업과 같은 민감한 미국의 수출품을 타깃으로 보복 조치를 취하는 전략을 따르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에 무역전쟁은 도움이 안 되는 멍청한 짓이다. 지난 수십 년 사이 기업 활동이 초(超)국경화하면서 큰 기업들이 어디에서 어떤 물건을 만드는지가 복잡해졌다. 생산과정 단계마다 해외의 부품 공급자와 생산품 수요자들과 엮인 복잡한 사슬구조를 이루고 있다. 미국 내 공장에서 SUV 차량을 생산해 미국 내수 시장과 해외에 판매하는 독일의 자동차 기업 다임러 벤츠가 중국의 관세로 울상이다. 유럽에서 수입하는 철강류 부품은 미국의 관세로 더 비싸졌고, 자사 미국산 차량은 중국의 미국차에 대한 보복 관세로 중국 시장에서 타격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EU도 일부 미국 수출품에 대해 관세를 인상했다. 수입 오토바이 관세가 6%에서 31%로 오르자 미국의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회사가 해외에 공장 설립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제조업의 대표적 브랜드로 상징성이 큰 회사다. 대통령 취임 직후 이 회사 경영진을 백악관으로 초대하며 자신의 미국 제조업 부활 정책을 홍보했던 트럼프는 해외 공장 설립 방침에 격분해 트위터로 세금 부과를 협박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무역 의존도는 상당히 높다. 따라서 무역전쟁은 강 건너가 아니라 옆집의 불이다. 본격화되면 다양한 업체들이 타격을 받을 것이며 지금도 어려운 고용사정이 더 나빠질 것이다. 일각에서는 통상전략 대응을 주문하고 있지만 배의 갑판이 크게 기울면 갑판 위 의자들은 난장판이 되는 형국을 피할 수 없다.

또 다른 충격 요인으로 미국의 금리 인상도 있다. 그 여파로 한국은행이 정책 금리를 올리지 않아도 시중 금리는 계속 오를 것이다. 나라 밖에서 몰려오는 폭풍우에 대비해 국내 경제 사정을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시운(時運)을 알 수 없는 새로운 시도는 때를 잘 살피며 기다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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