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호의 고미술을 찾아서] 벽에 걸면 다 안다?

입력 2018-07-10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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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은 거래 정보에 대한 접근이 어렵고 거래 비용이 과다하다. 또 불확실성이 크고 환금성은 낮다. 경제학적으로 대단히 비효율적인 시장이다. 그런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미술품은 활발히 거래되어 왔고, 최근에는 그 증가세가 일반 경제의 그것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왜 사람들은 그처럼 미술품을 선망하고 사들이는 것일까? 첫째, 미술품이 삶을 풍요롭게 하며 마음에 안식을 준다는 기대와 믿음 때문이다. 그 바탕에는 우리 삶과 미술의 관계, 또는 미술의 본질적인 가치와 역할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깔려 있다. 미술 문화는 그런 인식을 생육의 자양분으로 삼아 융성하기 마련인데, 거기서 자연스럽게 소장하며 즐기는 컬렉션 동기가 유발된다.

둘째, 투자자들은 미술품이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에 비해 수익률이 높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투자의 목적은 수익 창출이니 수익률이 높은 미술품 투자는 당연하고 합리적인 자산 운용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집에 두고 감상할 때 얻어지는 마음의 안식이나 힐링까지 수익으로 간주한다면 실제 수익률은 더 높아질 것이다.

미술품이 훌륭한 투자 또는 재테크 수단이라는 사실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를 실증하는 자료는 넉넉하다. 특히 미술가격지수 분석을 통해 미술품이 여타 자산에 비해 가치의 보전과 증식에 탁월하다고 밝힌 뉴욕대학의 모제스(Moses), 메이(Mei) 교수의 연구는 미술의 대중적인 투자시대를 여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셋째, 미술품에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상속에 유리하다는 점이다. 나라마다 상속 문화나 세제가 다르지만, 미술품 상속이 다른 자산보다 이점이 많다는 점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그리고 통상 미술품 상속에는 돈으로 따지기 힘든 무형적인 가치가 수반된다. 예를 들면,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이나 안목, 집안 분위기와 같은 정신적인 자산이 함께 자녀들에게 상속된다는 것인데, 이것까지 감안하면 미술품 상속의 이점은 한참 커져야 마땅하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미술품에 대한 인간의 엇나간 감성과 심리, 과시욕(snobbism)과 같은 세속적인 욕망에 주목하면 이야기는 좀 더 풍성해진다. 현대인들은 명품에 열광한다. 있는 사람들은 과시를 위해 명품을 사고, 없는 사람들은 있는 사람들의 그런 소비를 모방한다. 명품을 소유함으로써 보통사람들과는 차별되고 상류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명품은 돈만 있으면 해결된다. 하지만 돈으로 안 되는 것이 교양과 취향, 그것에서 풍겨 나오는 기품, 아우라다. 다행스럽게도(?) 신흥 부자들이 고급 문화를 손쉽게 흉내 낼 수 있는 영역이 하나 있다. 바로 미술품이다. 집이나 집무실에 걸려 있는 명화는 주인의 교양과 문화 수준을 나타낸다. 순수하고 아름다워야 할 미술이 뛰어넘을 수 없는 계급의 벽이 되고 있는 셈인데,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끼 넘치는 말로 그 벽을 깨트리는 방법을 풍자했다: “은행에 백만 달러가 있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벽에 걸면 다 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열정투자(passion investment)’의 속성도 흥미롭다. 열정투자는 말 그대로 감성과 열정으로 즐기면서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다. 미술품이 대표적이고, 시계·보석·와인·앤티크 등도 주요 대상이다. 부동산이나 금융자산과 같이 돈만을 목적으로 하는 메마른 투자에 지친 투자자들이 그 대안으로 점찍으면서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

오늘날 미술품 투자나 컬렉션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열정만으로 준비 없이 덤비기엔 너무나 많은 위험이 곳곳에 잠복하고 있다. 미술의 참된 가치를 이해하고 시장의 생리를 배우면서 한 점 두 점 모으다 보면 삶의 풍요로움에 더해 언젠가 수익도 창출되는 행운을 기대할 수 있다. 냉정(투자)과 열정(컬렉션)을 적절히 아우르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아니 그래서 미술품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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